시읽는기쁨

바람의 말 / 마종기

샌. 2008. 3. 7. 14:13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것인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바람의 말 / 마종기

 

세상 살아가는 일이 한 자락 바람처럼 허전하고 아득한 일이다.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따스하고 눈물겹기도 하다. 우리의 유한함이 유한함으로 인하여 위로 받고, 추억과 그리움이 되어 가슴에 담긴다. 사람을 아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이 시에는 삶에 대한 관조와 연민이 배어있다. 그리고 바람처럼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모호성이이 시의 신비감을 더해준다.

 

착한 당신, 피곤하고 속 상해도 이것만은 잊지 마! 삶이란 따스하고 아름답고 신비한 거야! 아득하게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속삭이고 있어. 난 그 속삭임이 당신의 목소리라는 걸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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