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뻘물 / 송수권

샌. 2008. 2. 20. 10:49

이 질퍽한 뻘내음 누가 아나요

아카시아 맑은 향이 아니라 밤꽃 흐드러진

페로몬 냄새 그보다는 뭉클한

이 질퍽한 뻘내음 누가 아나요

 

아카시아 맑은 향이야

열 몇 살 가슴 두근거리던 때 이야기지만

들찔레 소복이 피어지던 그 언덕에서

나는 비로소 살냄새를 피우기 시작했어요

 

여자도 낙지발처럼 앵기는 여자가 좋고

그대가 어쩌고 쿡쿡 찌르는 여자가 좋고

하여튼 뻘물이 튀지 않는 꽹과리 장고 소리보단

땅을 메다 치는 징 소리가 좋아요

 

하늘로는 가지 마....

하늘로는 가지 마....

캄캄하게 저물면 뒤늦게 오는땅 울음

그 징 소리가 좋아요

 

저물다가 저물다가 하늘로는 못 가고

저승까진 죽어 갔다가

밤길에 쏘내기 맞고 찾아드는 계집처럼

새벽을 알리며 뒤늦게 오는 소리가 좋아요

 

- 뻘물 / 송수권

 

아련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쉽게 피부에는 와 닿지는 않는 남도의 정서가 있다. 그녀를 만나러 이번에 다시 남도를 찾았지만 벌교의 꼬막집에서 까먹는 꼬막 맛이 비린 것처럼 난 아직 익숙하지 못하다. 익숙하지 않으므로 멀어지면 다시 그 맛이 그리워진다. 시인은 어느 시에서 그 꼬막 맛을 그늘이 있는 맛이라고 불렀다. 꼬막은 뻘의 맛이다. 남도의 삶은 꼬막을 캐내는 여인네들의 뻘물이 튀긴 옷이다. 남도는 빛보다는 그늘, 아카시아 향보다는 밤꽃 향기, 꽹과리 소리보다는 서러운 징 소리다.

 

남도에 다녀온 뒤에 내귀에는 계속 징 소리가 들렸다. 서럽고도 반갑게, 그리고 진한 밤꽃 향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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