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16

끼리끼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체로서의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즉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특성이 오늘의 호모 사피엔스를 만들었다.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이 계발되면서 두뇌가 발달하고 문명의 건설이 가능하게 되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은 가정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 모든 공동체에는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하는 공통분모가 있다. 혈연이나 학연, 지연 등이 대표적이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이루어진 모임도 많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듯 인간은 '끼리끼리' 어울린다. 결국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은 서로 대하기가 편하다. 이해의 폭이 넓은 탓이다. 예를 들어, 내향성인..

참살이의꿈 2023.05.27

딸을 위한 시 / 마종하

한 시인이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 딸을 위한 시 / 마종하 지난 주말에 손주가 다녀갔다. 손주가 지하철을 탔는데 한 할아버지가 귀엽다면서 이것저것 말을 시키고 용돈까지 만 원을 주더라고 자랑했다. 할아버지가 마지막에 한 말이 공부 열심히 해서 꼭 1등을 해야 한다고 당부하더란다. 우리는 "지금이 어느 시댄데" 하면서 같이 웃었다. 구세대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1등주의의 세뇌를 받으며 살아왔다. 다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지만 화석화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삶에서..

시읽는기쁨 2023.03.20

그 샘 / 함민복

네 집에서 그 샘으로 가는 길은 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이면 물 길러 가는 인기척을 들을 수 있었지요. 서로 짠 일도 아닌데 새벽 제일 맑게 고인 물은 네 집이 돌아가며 길어 먹었지요. 순번이 된 집에서 물 길어 간 후에야 똬리 끈 입에 물고 삽짝 들어서는 어머니나 물지게 진 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집안에 일이 있으면 그 순번이 자연스럽게 양보되기도 했었구요. 넉넉하지 못한 물로 사람들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던 그 샘가 미나리꽝에서는 미나리가 푸르고 앙금 내리는 감자는 잘도 썩어 구린내 훅 풍겼지요. - 그 샘 / 함민복 우리는 지금 서로가 서로에게 적이 되는 살벌한 세상을 살고 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불문율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호혜의 정신 대신 탐욕과 시기만 남았다. '영끌'은..

시읽는기쁨 2021.08.08

반성 / 함민복

늘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 반성 / 함민복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는 손 세정제가 있다. 코로나를 예방하라고 관리사무소에서 마련한 것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뒤에는 습관적으로 세정제로 손을 닦는다. 남의 손이 닿은 버튼이 오염되었을까 두려워서다. 그러나 이 시를 읽고는 반성했다. 먼저 손을 닦고 버튼을 누를 수도 있지 않는가.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결과는 동일하다. 그런데 둘 사이에 마음가짐은 천양지차가 난다. 시인의 타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심이 지극하다. 실천 여부를 떠나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마음이 아름답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반성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뭣이 중요한지는 내팽개쳐 놓고 엉뚱한 곁다리만 신경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시읽는기쁨 2021.01.06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날 / 김봄희

후두두둑 비가 세차게 내리는데 마을버스가 서둘러 정류장에 들어왔어. 사람들은 우산을 접지도 펴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버스에 오를 준비를 했지. 그때 교복을 입은 오빠가 가만히 버스 줄 밖으로 비켜서는 거야. 다른 차를 타려나 보다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기다리던 사람들이 버스에 다 오를 때까지 한참동안 우산을 높이 펴 들고 서 있더니 맨 마지막으로 버스에 오르는 거야. 그것을 본 만원 버스 속 사람들은 한 발짝씩 자리를 옮겨 오빠가 설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어. 마을버스는 걷는 사람들에게 빗물이 튀지 않게 더 천천히 움직였지. 나는 그날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거야. -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날 / 김봄희 따스하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누가 공익 광고로 찍어줬으면 좋겠다. 배려..

시읽는기쁨 2020.08.23

타인에 대한 섬세함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여자 둘이 들어온다. 바로 자전거로 직행하더니 나란히 앉아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러닝머신으로 옮겨서도 마찬가지다. 헬스장을 자기네 집 거실로 착각하는 것 같다. 말을 안 할 뿐이지 주변 사람이 얼마나 불쾌하게 여길지는 안중에도 없다. 헬스장 벽에는 타인을 위해 잡담을 삼가해 달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는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입힐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공동체 생활의 기본이다. 옆에 누가 있건 말건 큰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은 너무 자주 본다. 층간소음 문제도 이웃에 대한 배려심의 부족에서 생기는 게 아닐까. 우리는 너무 무례하고 투박하다.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남긴 상처의 무게를 잴 ..

참살이의꿈 2020.02.03

친절, 공손, 배려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시급한 문제가 무엇일까.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겠으나 나는 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나라의 전체 경제 수준은 상당한 레벨에 올라섰다. 밖에서는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인정해 준다. 그런데 국민이 체감하는 살림살이는 일인당 소득 3만 달러라는 통계가 무색하다. 국민의 행복도는 OECD에서 항상 하위권이다. 빈부격차에 따른 상대적 빈곤감이 큰 원인이다. 한국은 지나친 경쟁 사회여서 가정이나 직장 모두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아이들은 일찍부터 경쟁 시스템에 길들여진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욕망끼리 충돌하며 불꽃이 인다. 농촌 공동체의 두레 정신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도시 생활은 사막과 같다. 사람을 만나면 우선 경..

참살이의꿈 2019.06.19

독일과 일본

해외에 몇 번 나가보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나라는 독일과 일본이다. 독일은 24년 전에 갔는데 한 달가량 머물렀다. 독일이 통일된 지 4년이 지난 뒤였다. 첫인상은 질서정연한 나라라는 것이었다. 거리에서 제일 인상적인 것은 교통법규의 준수였다. 보행자가 지나가면 무조건 자동차는 정지하고, 스쿨버스가 서 있으면 아예 몇 미터 뒤에서 대기하는 광경은 너무 놀라웠다. 그런 사람 우선 문화가 부러웠다. 독일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규칙을 잘 지키느냐고 직접 물어본 적이 있었다. 독일 사람이 착해서가 아니라 엄격한 법 집행의 결과라는 답을 들었다. 규칙을 어기면 필벌이 따른다. 그러면 원칙이 통하는 사회가 된다. 독일은 법가(法家)의 정신이 구현되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너무 원칙대로 돌아가면 사회..

참살이의꿈 2018.01.27

기다려 주기

아파트 현관으로 가는데 젊은 여인이 앞에 가고 있다. 이럴 때는 속도를 늦춘다. 먼저 보내고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서다. 모르는 사람과 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느릿느릿 걸어 들어가는데 복도 안쪽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엘리베이터가 왔어요." 내가 뒤에 따라오는 걸 알고 같이 올라가기 위해 기다려 준 것이다. 이런 경우는 드물다. 대개 뒤에 오는 사람을 무시하고 먼저 올라간다. 나부터도 그렇다. 같이 타게 될까 봐 발걸음을 빨리 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닫힘 버튼을 부리나케 누른다. 못 된 짓이란 걸 알지만 그렇게 살아왔다. 사람 기척이 있는데도 미리 가버리는 행위는 얄밉다. 도시에서는 서로가 그런 무례를 주고받으며 산다. 어쩔 수 없이 함께 올라가게 되었지만 기분은 무척..

참살이의꿈 2017.09.29

얀테의 법칙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나라와 선진국을 비교하는 내용의 대화가 있었다. 여러 얘기가 있었지만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하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양보는 찾아보기 어렵다. 개인의 일상 생활부터 정치판까지 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난폭한 사회라는 것이었다. 모임 중의 한 사람이 북유럽 정신의 토대가 된다는 '얀테의 법칙(The Law of Jante)'을 소개해 주었다. 1.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You're not to think you are anything special. 2. 당신이 다른 사람처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You're not to think you are as good as we are. 3.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

참살이의꿈 2016.09.30

옛 마을을 지나며 / 김남주

찬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 옛 마을을 지나며 / 김남주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이가 조선 민족은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다는 등의 망언을 한 전력 때문에 시끄럽다. 젊은이들이 대기업만 선호하는 것도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는 성향 탓으로 돌렸다. 또, 6.25 전쟁을 미국을 붙잡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시련이라는 말도 했다. 복지가 부패보다 더 무섭다는 칼럼도 있다. 역사와 현실 인식에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이 사람은 개신교 근본주의 신앙에 친미 친일적인 식민사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나라의 지도자라면 사회 현상에 대한 올바른 원인 진단과 균형된 시각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총리감이 아니다. 이런 인물을 총리랍시고 추천한 걸 보면 ..

시읽는기쁨 2014.06.17

어떤 나쁜 습관 / 복효근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거시기 슈퍼 아저씨와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는 자기 집 층수보다 한층 위에서 내려 계단을 내려간다 이유를 물으니 자기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함께 탔던 모기들도 우르르 같이 내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기가 들리지 않을 만한 소리로 복선생도 그렇게 해보라는 충고를 해준다 그 뒤로 나는 모기가 많은 여름날이면 부러 그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두 층이나 걸어 올라간다 참 나쁜 습관이다 - 어떤 나쁜 습관 / 복효근 집으로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니 어떤 분이 문을 연 채 기다리고 있다. 감사한 눈인사를 하니, "뒤에 따라오시는 것 같아서..." 라며 수줍게 웃는다. 젊은 여성분이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 뒤에 사람이 따라오는 것 같으면 얼른 문을 닫아 버린다. 같..

시읽는기쁨 2013.12.04

옹달샘 / 엄재국

경북 문경시 산길 깊은 내화리 사과를 주렁주렁 매단 사과나무 한 그루가 명찰을 달고 있는데요 "지나다 목마르면 하나 따 드세요" 까치밥에 사람 밥 얹어 매달아 놓은 주먹만한 물통들 목젖 가득 찰랑대는 물소리 - 옹달샘 / 엄재국 이런 시를 읽으면 마음이 따스해진다. 그리고 부끄러워진다. 이 시에는 내 군더더기 말이 필요 없다. 나도 오늘은 저 산골 과수원 주인의 마음씨에 젖어보고 싶다. 한 순간이나마 차가운 내 가슴을 따스하게 데워보고 싶다.

시읽는기쁨 2008.04.07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

야간에 운전하다 보면 유난히 밝은 전조등을 켜고 있는 차량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 곧 경찰에서 단속할 계획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불법으로 개조한 이 전조등은 밝기가 정상 전조등의 10여 배에 달해 맞은 편 운전자에게 일시적인 시력 상실을 일으키고 잘못하면 대형 교통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운전 중에 이런 전조등을 만나면 눈이 부시면서 굉장히 짜증이 난다. 푸르스름한 색깔도 긴장과 불쾌감을 유발한다. 이런 불법 전조등을 장착하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기 힘들다. 전조등이 밝으니 자신이 운전하기에 편한 것은 틀림없으나 다른 사람이 받을 불편한 입장을 고려한다면 도저히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작금의 우리 사회 분위기가 그대..

길위의단상 2007.03.31

입장의 동일함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 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 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잘 알려진 신영복 님의 글이다. 님이 관계의 최고 형태라고 한 '입장의 동일함'이란 과연 어떤 것이며, 그것을 과연 내가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해 가끔씩 이리저리생각해 보게 된다. 관찰에서 애정, 애정에서 실천적 연대, 실천적 연대에서 입장의 동일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나와 그것에서 나와 너의 단계를 지나 궁극적으로 하나됨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보통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라는 말을 잘 쓰..

길위의단상 2006.04.03

조심스레 살기

사람들이 좀 조심스레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즈음 들어 자주 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행동하는데 대체로 서툰 것 같다. 한국 사회가 다이나믹하고 에너지가 넘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돌진성은 뛰어나지만 옆을 돌아보는데는 소홀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늘 부딪치는 현상들이다. 사무실이나 도로에서의 몰염치한 태도들, 또는 쟁점이 되는 사회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 얼마나 관용이나 배려의 정신이 부족한지를알 수 있다. 물론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지나서 되돌아 보면 내 안하무인격인 이기적 태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는지 낯이..

길위의단상 2005.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