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삼회 12

강변역에서 올림픽공원으로

올림픽공원에서 삼삼회 모임이 있어서 강변역에서부터 걷기로 했다. 전에 이 부근에서 살 때는 많이도 걸었던 길이다. 발을 내딛는 모든 곳에 추억이 서려 있다. 지층이 쌓이듯 나이가 들수록 추억도 두꺼워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과거는 아름답게 기억된다. 당시에는 고통이었을지라도 지나고 보면 누군가 예쁘게 채색해 놓았다. 노년의 버팀목 중 하나가 추억의 힘이다. 잠실철교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한강을 건넌다. 한강 다리 중 유일하게 자동차 소음에서 벗어난 길이다. 그동안 스카이라인도 많이 변했다. 대표적인 게 연말에 준공 예정인 롯데타워다. 성내천 둑길이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이 둑길을 걸었다. 한강까지 나가 강물을 보며 한참을 앉아 있기도 했다. 15년 전이다. 벚나무가 많이 컸다. 올림픽공원에 들어가서 약..

사진속일상 2016.06.17

삼삼회에서 남산 걷다

삼삼회에서 신록의 남산길을 걷다. 회장이 바뀐 뒤 모임 스타일이 달라졌다. 저녁에 만나 식사하는 대신, 오전에 만나 가벼운 걷기를 하고 점심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변했다. 나로서는 환영할 일이다. 지난 모임에서는 인왕산에 올랐고, 이번에는 남산길을 걸었다. 여섯 명이 모였다. 새로 나온 한 친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51년 만에 만났다. 시골 초등학교라 남학생 반은 하나밖에 없어 6년을 같이 보냈는데도 얼굴이나 이름이 낯설었다. 그래도 공통의 추억에 웃다 보니 금방 가까워졌다. 길 주변에는 꽃이 많아 이리저리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행에 자꾸 뒤처져도 좋았다. 성곽길을 따라 팔각정에 올랐다. 팔각정에서 남산공원으로 내려가는 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중심부. 하필 올들어 제일 심한 황사가 찾아..

사진속일상 2016.04.23

인왕산 자락길

늙으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는데 나는 반대다. 아침 일고여덟 시가 되어야 겨우 일어난다. 삼삼회에서 인왕산에 오르기로 하고 10시에 경복궁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약속을 못 지켰다. 근래 벌써 두 번째다. 한 시간 늦게 도착해서 정상으로 따라가지는 못하고 대신 손쉬운 인왕산 자락길을 걸었다. 인왕산 남쪽 자락을 따라 3.2km의 길이 숲 속으로 꼬불꼬불 나 있다. 가볍게 걷기에 적당한 길이다. 산에 올랐던 일행과 끝 지점인 창의문에서 만날 수 있었다. 시작점은 사직단이다. 단군성전 옆 길에는 어천절(御天節)을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낀다. 어천절이란 이름이 생소한데 단군이 승천한 걸 기념하는 날이라고 한다. 자락길은 사직단 - 단군성전 - 황학정 - 택견수련터 - 수성동계곡 - 버드나무약수터 ..

사진속일상 2016.03.03

소백산 친구 집

단양군 대강면 소백산 깊은 곳에 살고 있는 친구네 집을 삼삼회 회원들과 찾아갔다. 수년 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준비하더니 작년 퇴직 후에는 가족과 떨어져 거의 상주하며 살고 있다. 좁은 비포장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곳, 산골은 생각보다 깊었다. 휴대폰도 연결되지 않는 오지였다. 깊은 산중이어선지 터의 경사가 급한 게 흠이었다. 주위를 둘러싼 산세도 험했다. 어느 건축가의 얘기를 들으니 사람들이 고르는 터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차분한 사람은 차분한 터를 고르더라는 것이다.이 터가 친구에게는 잘 맞을 것도 같다. 소형 이동식 주택은 혼자 살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전기 패널로 난방을 하고 화장실은 밖에 따로 있었다. 취사는 소형 가스통을 충전해 쓰고, 동네와 왕래할 때는 작..

사진속일상 2012.06.10

오이도

"오이도행 열차가 도착합니다." '오이도'로 가는 전철을 4년 동안 타고 출퇴근했지만 정작 오이도에는 가보지 못했다. 어떤 장소는 차라리찾지 않아마음속에만 담아두는 게 나을 때가 있다. 오이도가 그런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때는 임영조 시인의 '오이도'라는 시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마음속 성지는 변방에 있다 오늘같이 싸락눈 내리는 날은 싸락싸락 걸어서 유배 가고 싶은 곳 외투 깃 세우고 주머니에 손 넣고 건달처럼 어슬렁 잠입하고 싶은 곳 이미 낡아 색 바랜 시집 같은 섬 - 오이도행 열차가 도착합니다 나는 아직도 그 섬에 가본 적 없다 이마에 '오이도'라고 쓴 전철을 날마다 도중에 타고 내릴 뿐이다 끝내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묻어둔 여자 같은 오이도 문득 가보고 싶다, 그 섬에 가면..

사진속일상 2011.11.08

안양예술공원

낮에 시내에서 볼일을 보고 저녁 약속 장소인 안양예술공원으로 갔다. 3시간의 여유가 생겨 천천히 산책하며 공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예술'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으니 혹 북 카페라도 있으면 책이라도 보며 쉴 요량이었다. 전에는 안양유원지라고 했는데 언제부턴가 안양예술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유원지보다는 예술공원이 훨씬 고상하고 품격 있게 들린다. 무엇이든 작명이 중요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개명만 한다고 포장이 내용을 대치할 수는 없다. 여기는 공원이기보다는 음식 거리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길을 따라 먹고 마시는 가게들밖에는 없다. 여관이나 모텔이 전시장이나 공연장보다 더 자주 보인다. 이름은 예술공원이지만 예술적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조각 작품들이 산재해 있지만변방으로 밀려나 있는 느낌..

사진속일상 2011.02.13

파주에서 봄바람을 쐬다

고향 마을에 초등학교 동기는 9 명이나 된다. 그중에서 연락이 되지 않거나 멀리 지방에 살고 있는 동무를 뺀 다섯 명이 두세 달에 한 번씩은 만난다. 이번에는 파주에서 양돈을 하고 있는 B의 초대로 파주와 문산 지역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봄 햇살이 따스했다. 12시에 문산에서 합류한 뒤 먼저 갈릴리농원으로 가서 장어로 점심을 했다. 그나마 번호표를 받고 30분 정도 기다린 것도 다행이었다. 장어구이로 유명한 이 집, 몇 년 전에 왔을 때와 달리 깨끗한 건물이 새로 들어섰다. 그때는 바닥에 자갈이 깔린 비닐하우스였다. 이 집의 특징은 양념을 바르지 않고 장어를 굽는다는 것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고소한 맛만은 변하지 않았다. B가 인근의 플로방스와 영어마을로 안내했다. 특히 플로방스는가족 나들이객들과젊은 ..

사진속일상 2010.03.14

선바위역에서 안양예술공원까지 걷다

어제 저녁에는 삼삼회 모임이 안양예술공원에서 있었다.시간 여유가 있어서 이왕이면 걸어가기로 했다. 출발지는 과천의 선바위역이었다. 맑고 따스한 토요일 오후였다. 선바위역에서 나오면 바로 양재천과 만난다. 천변 길을 따라 과천 방향으로 걷는다. 앞에는 관악산이 보인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저 산을 넘어서 안양으로 갔을 것이다. 아직은 조심해야 할 때다. 시내로 들어갈수록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천변 길은 과천 시내를 지나다가 중앙공원에서 갑자기 끝난다. 그 뒤부터는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하는 난코스였다. 1시간 30분 만에 인덕원에 도착했다. 해장국으로 속을 풀었다. 그저께 옛 동료들을 만나 늦게까지 회포를 풀었더니 속이 불편하던 터였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천변 길이 나온다. 안양천의 지류인 학의천이다..

사진속일상 2010.02.21

마당놀이 공연을 보다

삼삼회의 송년 모임으로 11 명의 회원이 마당놀이 '심청전' 공연을 보았다.7 명은 부부 동반이었다. 마당놀이는 극단 미추에서 20여 년 째 이어져 오고 있는 송년의 단골공연인데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늘 장충체육관에서 공연이 있었는데 올해는 월드컵 경기장 한 켠의 임시 공연장에서 열렸다. 실내는 아담하면서 무대와 거리가 가까워 오히려 큰 체육관보다 나은 것 같았다. 좌석은 가득 찼고 관중들의 호응도도 높았다. 공연을 보면서 마당놀이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윤문식, 김성녀 두 배우의 힘을 다시금 느꼈다. 지난 번 '남사당의 하늘'이라는 연극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공연 성공의 비결은 두 사람의 맛깔나는 연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뺑덕어멈 역을 맡은 김성녀의 간드러지는 연기는 일품이었다. 마당놀..

읽고본느낌 2008.12.07

청계산에 오르다

자연은 마술사다. 한 바퀴 돌 때마다 옷 색깔을 바꾸는 마술사처럼 이즈음의 나무에서 돋아나는 새 잎들의 색깔 변화는 신기한 마술 그대로다. 하루가 다르게 나뭇잎의 색깔은 미묘한 변화를 연출한다. 사계절이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4월의 지금 이맘때가 가장 아름답다. 산 위에서 초록과 연둣빛의 물결을 바라보노라면 그 안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봄 숲은 매혹적이다. 봄의 산길에서 나는 초록과 하나가 된다. ‘신록예찬’에 나오는 말대로 나의 안중(眼中)에도 신록이요, 나의 흉중(胸中)에도 신록이다. 빨리 가자는 재촉이 없다면 몇 시간이고 앉아 이 봄의 향연에 함께 하고 싶다. 어제는 삼삼회 회원들과 청계산을 올랐다. 원터골에서 출발하여 매봉과 망경대, 이수봉, 국사봉을 거쳐 정신문화연구원으로..

사진속일상 2008.04.21

친구가 떠나가다

친구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나라로 떠났다. 인간 세상에서 만나면 이별이 있고, 이별은 다시 만남을 전제로 하건만 이렇게 다시는 만나볼 수 없는 이별도 있다. 친구와는 초등학교, 중학교 동기 사이였다. 같은 마을에서 산 것은 아니지만 여러 명의 동기 중에서도 닮은 점이 많아둘이는 가까운 편에 속했다. 그러나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헤어져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초등 동기모임이 만들어지면서 자주 만나게 되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 통하는 공통점을 많이 발견했다. 아주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뭐랄까 심중으로 따뜻한 감정을 느끼는 그런 사이였다고 할 수 있다. 투병 중에서도 나와 통화를 할 때면 자신의 처지보다는 도리어 나를 더 위로해 주었다. 친구가 떠나고 나니 생전에 좀더 자주 찾아가서 얼굴을..

사진속일상 2007.06.21

옛 동무들과의 재회

초등학교 동창 모임은 늘 오순도순하며 즐겁다. 우리는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데 나는 5년여 모임에 나가지 않다가 이번에 다시 옛 동무들과 만나게 되었다. 학연 중에서도 아마 초등학교 동무들이 누구에게나 제일 허물없는 사이일 것이다. 지금의 사회적 지위나 가짐에 관계없이 당시의 천진난만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초등학교 동창들이다. 그것은 우리들이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를 6년 내내 거의 같은 반에서 다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임에서는 주로 옛 이야기가 화제가 된다. 그중에서도 유별나게 예전 일들을 잘 기억하고 있는 동무가 있다. 담임 선생님의 성함이나 특징부터, 심지어는 우리들에게 읽어준 동화책의 제목까지도 기억하고는 우리를 그시절로 돌아가게 해준다. 내 머리 속에는 과거가 하얗게 바래버렸지만 ..

길위의단상 2007.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