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11

상처로 숨 쉬는 법

아도르노 철학을 풀이한 책이다. 철학자 김진영 선생이 아도르노의 를 강독하는 형식으로 설명한다. 아도르노(T. W. Adorno, 1903~1969)는 독일 출신의 철학자로 미국으로 망명하여 연구 활동을 한 분이다. 아도르노는 사회, 문화, 과학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인간 소외 및 물상화를 예리하게 비판했다. '부정의 변증법'이나 '계몽의 변증법' 등이 문명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기조로 하고 있다. 우리 시대에 아도르노 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관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아직 살 만하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우리 사회에 잘못된 점도 있지만 나름대로 편안한 점도 있어, 다 좋은 세상이 어디 있겠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읽고본느낌 2023.02.01

풀 / 김재진

베어진 풀에서 향기가 난다 알고 보면 향기는 풀의 상처다 베이는 순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지만 비명 대신 풀들은 향기를 지른다 들판을 물들이는 초록의 상처 상처가 내뿜는 향기에 취해 나는 아픈 것도 잊는다 상처도 저토록 아름다운 것이 있다 - 풀 / 김재진 '아름다움'은 '앓음'에서 나왔는지 모른다. 예술 작품을 보라. 창작 과정의 고통과 아픔 없이 나오는 명작은 없다. 상처의 향기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풀은 자신의 전 생이 베어지는 때에 향기를 낸다. 원망과 한탄의 늪에 빠지거나 복수의 칼날을 갈지 않는다. 상처에서 나오는 악취는 썩는 신호다. 향기는 생명 의지의 표현이다. 상처의 향기가 아름다움이다.

시읽는기쁨 2019.08.30

마음의 상처

"그땐 니가 어찌나 골을 내든지...." 지나가며 하는 어머니의 말이 아프다. 그 옛날 부모님은 억척스레 일을 하셨다. 자식 다섯을 모두 서울로 보내 공부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밤에 고향집에 도착하면 집은 늘 캄캄한 채 텅 비어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논에서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자식을 위해 고생하신다는 걸 알면서도 오랜만에 보는 자식을 집에서 맞아주지 않는 부모님이 미웠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아마 그때 심통을 부렸던 것 같다. 뭔 일을 밤낮없이 하느냐고 투덜거렸을 것이다. 부모님은 묵묵히 듣기만 했음에 틀림 없다. 그게 마음의 흔적으로 남아 40년이 지난 지금 조심스레 꺼내보이는 게 아닐까. 그때 철이 들고 속이 깊었다면 논으로 나가 부모님의 일을 도..

참살이의꿈 2014.08.09

상처

산길을 걷다가 소나무에 새겨진 상처를 보았다. 오래된 나무에는 거의 전부 이런 상처가 나 있었다. 소나무 껍질을 벗기고 홈을 파서 송진이 쉽게 흘러내리도록 한 흔적이다. 자원이 부족했던 일제 강점기 때부터 1970년대까지 우리 산의 소나무들이 이런 피해를 보았다. 수십 년이 흘렀어도 소나무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마음에 남겨진 상처는 평생을 가면서 괴롭힌다. 심리 치유를 하는 것은 저 소나무처럼 보형재를 발라 더는 썩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 정도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아픔이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사진속일상 2014.06.23

타이어의 못을 뽑고 / 복효근

사랑했었노라고 그땐 또 어쩔 수 없었노라고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를 너를 찾아 고백하고도 싶었다 - 그것은 너나 나나의 가슴에서 못을 뽑아버리고자 하는 일 그러나 타이어에 박힌 못을 함부로 잡아 뽑아버리고서 알았다 빼는 그 순간 피식피식 바람이 새어나가 차는 주저앉고 만다 사는 일이 더러 그렇다 가슴팍에 대못 몇 개 박아둔 채 정비소로 가든지 폐차장으로 가든지 갈 데까지는 가야 하는 것 치유를 꿈꾸지 않는 것 꿈꾼대로 결국 치유되지 않을 것이므로 대못이 살이 되도록 대못을 끌어안는 것 때론 대못이 대못 같은 것이 생이 새어나가지 않게 그러쥐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 - 타이어의 못을 뽑고 / 복효근 마음이 보이는 거울이 있다면 어떨까? 상처투성이의 마음을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어떨까? 마음이 보이..

시읽는기쁨 2012.12.10

벌레 먹은 나뭇잎 / 이생진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 벌레 먹은 나뭇잎 / 이생진 전미정 님의 ‘상처’에 대한 아래 글을 읽는 것으로 시 감상에 대신한다. 상처는 마술이다. 그렇게 흉하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꽃처럼 피어 살랑거리고 있으니까. 젊은 날에는 들킬 새라 그렇게 숨겨두던 상처가 다른 모습으로 승화되니 감탄스럽기 그지없다. 어쩌다 이야기보따리를 풀게 되면 서로들 상처 하나씩을 꺼내어 보여 주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상처가 피고 졌다가 다시 피어났다는 이..

시읽는기쁨 2011.06.29

무너지는 것들 옆에서 / 고정희

내가 화나고 성나는 날은 누군가 내 발등을 질겅질겅 밟습니다. 내가 위로 받고 싶고 등을 기대고 싶은 날은 누군가 내 오른뺨과 왼뺨을 딱딱 때립니다. 내가 지치고 곤고하고 쓸쓸한 날은 지난날 분별 없이 뿌린 말의 씨앗, 정의 씨앗들이 크고 작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힙니다. 오 하느님, 말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정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정을 제대로 다스리기란 나이를 제대로 꽃피우기란 외로움을 제대로 바로 잡기란 철없는 마흔에 얼마나 무거운 멍에인가요. 나는 내 마음에 포르말린을 뿌릴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따뜻한 피에 옥시풀을 섞을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오관에 유한락스를 풀어 용량이 큰 미련과 정을 헹굴 수는 더욱 없으므로 어눌한 상처들이 덧난다 해도 덧난 상처들로 슬픔의 광야에 이른다 해도, 부처님이..

시읽는기쁨 2010.11.20

붉고 푸른 못 / 유용주

나무는 땅에 박힌 가장 튼튼한 못, 스스로 뿌리내려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는다 만신창이의 흙은 안으로 부드럽게 상처를 다스린다 별은 하늘에 박힌 가장 아름다운 못, 뿌리도 없는 것이 몇 억 광년 동안 빛의 눈물을 뿌려댄다 빛의 가장 예민한 힘으로 하느님은 끊임없이 지구를 돌린다 나는 그대에게 박힌 가장 위험스러운 못, 튼튼하게 뿌리내리지도 아름답게 반짝이지도 못해 붉고 푸르게 녹슬어 있다 소독할 생각도 파상풍 예방접종도 받지 않은 그대의, 붉고 푸른 못 - 붉고 푸른 못 / 유용주 유용주 시인은 처음에 산문으로 알게 되었다. 어느 잡지의 최근호에서 시인의 감칠 맛 나는 글을 다시 만났다. 이건 유 시인의 글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시인의 산문은 개성이 있다.소녀적 감성이 들어 있는 글에는 삶에 대한..

시읽는기쁨 2010.08.07

상처에 대하여 / 복효근

오래 전 입은 누이의 화상은 아무래도 꽃을 닮아간다 젊은 날 내내 속썩어쌓더니 누이의 눈매에선 꽃향기가 난다 요즈음 보니 모든 상처는 꽃을 꽃의 빛깔을 닮았다 하다못해 상처라면 아이들의 여드름마저도 초여름 고마리꽃을 닮았다 오래 피가 멎지 않던 상처일수록 꽃향기가 괸다 오래된 누이의 화상을 보니 알겠다 향기가 배어나는 사람의 가슴속엔 커다란 상처 하나 있다는 것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 상처에 대하여 / 복효근 상처를 얘기하는 복 시인의 시 중에 ‘탱자’가 있다. 밖으로만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난 가시로 인해 찔리고 상처받으며 살아내고 있는 탱자를 그리고 있는 시다. 탱자의 살갗은 제 가시로 저를 찔러대고 할퀸 수많은 상처투성이다. 스스로를 찌르는 자해의 가시로 인해 노랗게 익은 탱자는 더 향기..

시읽는기쁨 2010.06.15

솟구쳐 오르기 / 김승희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날게 하지 않으면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솟구쳐 오르게 하지 않으면 파란 싹이 검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나 무섭도록 붉은 황토밭 속에서 파아란 보리가 씩씩하게 솟아올라 봄바람에 출렁출렁 흔들리는 것이나 힘없는 개구리가 바위 밑에서 자그만 폭약처럼 튀어나가는 것이나 빨간 넝쿨장미가 아파아파 가시를 딛고 불타는 듯한 담벼락을 기어 올라가는 것이나 민들레가 엉엉 울며 시멘트 조각을 밀어내는 것이나 검은 나뭇가지 어느새 봄이 와 그렁그렁 눈물 같은 녹색의 바다를 일으키는 것이나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삶은 무게에 짓뭉그러진 나비알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존재는 무서운 사과 한 알의 원죄의 감금일 뿐 죄와 벌의 화농일 뿐 - 솟구쳐 오르기 / 김승희 봄은 영어로 Spring, ..

시읽는기쁨 2008.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