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무귀 11

장자[176]

무릇 발로 갈 수 있는 땅은 밟을 수 있는 땅뿐이다. 비록 밟은 땅뿐이지만 밟지 않은 땅이 많다는 것을 믿으며 그런 연후에야 밟은 경험을 잘 넓힐 수 있다. 사람이 가진 지식은 적다. 비록 아는 것은 적지만 알지 못하는 것에 의뢰하면 자연이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故足之於地也 踐 雖踐 恃其所不전 而後善搏也 人之於知也少 雖少恃其所不知 而後知天之所謂也 - 徐无鬼 14 걸어가는데 넓은 땅이 필요 없다고 발로 밟을 자리만 남기고 모두 없애면 어떻게 될까. 몇 걸음 옮기지도 못하고 넘어지고 말 것이다. 밟지 않는 넓은 땅이 있으므로 내가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이것이 실용적 관점과 다른 점이다. 세상은 오직 유용(有用)만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어지럽고 비틀거린다. 평화나 기쁨, 행복이 없다. 장자는 ..

삶의나침반 2011.08.12

장자[175]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죽이는 일이 그치지 않는데도 그것을 따져 물을 줄 모른다. 有亡國戮民無已 不知問是也 - 徐无鬼 13 에 숨어 있는 정신 중 하나가 '저항'이다. 전국시대라는 당시 상황에서 장자가 느꼈을 아픔과 절망이 얼마나 컸을까. 지배 체제나 기득권층에 대한 불신과 저항으로 연결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장자의 저항은 세상을 개혁하려는 또 다른 시도가 아니라 체제에 협조하고 동참하지 않으려는 보다 적극적인 저항이었다. 백성과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학파와 이데올로기가 생겼지만 결국은 지배층에 이용 당하고 백성에게 고통만 더해주었다. 민중의 삶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들임을 장자는 간파했다. 장자는 월왕 구천(句踐)과 대부 종(種)의 예를 든다. 구천이 싸움에져서 회계산에 숨어 있을 때 ..

삶의나침반 2011.08.04

장자[174]

이런 까닭에 신인(神人)은 사람이 몰려드는 것을 싫어하고 사람들이 몰려들어도 그들과 무리 짓지 않는다. 또한 무리 짓지 않으므로 이익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너무 친애함이 없고 너무 소원함도 없으며 덕을 품고 화합으로 따뜻이 하며 천하를 따를 뿐이다. 이를 일러 진인(眞人)이라 한다. 개미가 양고기의 노린내를 좇은 지혜를 버리고 물고기가 뭍에서 서로 거품을 품어 적셔주는 꾀를 버리고 양이 노린내로 개미를 유혹하는 사심을 버리는 것처럼, 눈은 보이는 눈이 되고 귀는 들리는 귀가 되며 마음은 본성을 회복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是以神人惡衆至 衆至則不比 不比則不利也 故無所甚親 無所甚疏 抱德煬和 以順天下 此謂眞人 於蟻棄知 於魚得計 於羊棄意 以目視目 以耳聽耳 以心復心 - 徐无鬼 12 ‘눈은 보이는 눈이 되고, ..

삶의나침반 2011.07.27

장자[173]

뼛골이 없는 아첨쟁이를 ‘난주’라고 부르고 남의 그늘에서 편안함을 구하는 자를 ‘유수’라고 부르고 수족이 굽어 몸이 괴로운 병신을 ‘권루’라고 부른다. 이른바 난주는 어느 한 선생에게 배운 말을 무조건 따르고 아첨하며 자기 학설로 삼고는 스스로 만족한다. 그들은 만물이 시작되기 전을 알지 못하므로 난주라 부른다. 유수는 돼지에 기생하는 이를 말한다. 성긴 돼지 털에 살며 이것을 고대광실이나 넓은 정원으로 생각하고 발굽 사이나 젖통 사이나 사타구니를 편안하고 편리한 거처로 생각할 뿐, 어느 날 아침 도살부가 와서 팔을 가로채 풀을 깔고 연기 불에 태우면 자기도 돼지와 함께 타 죽는다는 것을 모른다. 나아가든 물러가든 제 구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이니 이런 것들을 이른바 유수라고 부른다. 권루는 순임금과 ..

삶의나침반 2011.07.17

장자[172]

설결이 제자인 허유를 만나 물었다. “그대는 어디를 가는가?” 허유가 답했다. “요임금으로부터 도망치는 겁니다.” 설결이 물었다. “무슨 말인가?” 허유가 답했다. “지금 요임금은 인(仁)을 한다고 애쓰고 있는데 나는 그것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을 걱정한답니다. 후세는 그 때문에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잡아먹게 될 것입니다.” 齧缺遇許由曰 子將奚之 曰 將逃堯 曰奚謂邪 曰 夫堯畜畜然仁 吾恐其爲天下笑 後世其人與人相食與 - 徐无鬼 10 경상초(庚桑楚)에 나왔던 내용이 다시 나온다. 후세에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잡아먹게 될 것이라는 경고다. 장자가 살았던 춘추전국 시대의 상황을 지금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보는 관점에 따라 좋았다 할 수도 있고, 나빴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세상은 ..

삶의나침반 2011.07.10

장자[171]

남백자기는 아들 여덟을 앞에 세워놓고 구방인을 불러 말했다. “나를 위해 자식들의 관상을 보아주시오! 누가 상서롭소?” 구방인이 말했다. “곤이 상서롭습니다.” 남백자기는 의심스러운 듯 좌우를 둘러보고 기뻐하며 말했다. “어찌 그렇소?” 구방인이 말했다. “곤은 장차 군주와 더불어 밥을 같이 먹으면서 몸을 마칠 것입니다.” 이에 남백자기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다. “우리 자식이 왜 이런 악운에 이른단 말인가!” 子기有八子陳諸前 召九方인曰 爲我相吾子 孰爲祥 九方인曰 梱也爲祥 子기瞿然喜曰 奚若 曰 梱也將與國君同食 以終其身 子기索然出涕曰 吾子何爲以至於是極也 - 徐无鬼 9 초식성의 인간과 육식성의 인간이 있다. 식성만이 아니라 인간의 성품도 그렇게 나눌 수 있다. 아마 장자학파는 초식성의 극단에 위치하지 ..

삶의나침반 2011.07.03

장자[170]

바다는 모든 강물을 사양하지 않으므로 큰 것의 지극함이요, 성인은 천지를 아울러 감싸고 은택이 천하에 미치지만 그의 성씨를 모른다. 이런고로 살아서는 벼슬이 없고 죽어서는 명성이 없으며 열매를 취하지 않고 이름을 세우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대인이라 말한다. 故海不辭東類大之至也 聖人幷包天地澤及天下 而不知其誰氏 是故生無爵死無諡 實不聚名不立 此之謂大人 - 徐无鬼 8 유가(儒家)에서는 이름과 명분을 중요시한다. 이념의 힘으로 질서 있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자의 생애가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유가에서 군자는 학식이나 덕행이 높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높은 관직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름이나 명분은 목숨보다 소중했다. 도가(道家)에서는 이름을 부정한다. 도덕경의 첫머리가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

삶의나침반 2011.06.26

장자[169]

오나라 왕은 강에 배를 띄우고 원숭이 산에 올랐다. 원숭이들은 그를 보고 순순히 포기하고 달아나 깊은 가시나무 숲으로 도망쳤다. 그중 한 마리가 거만하게 나뭇가지를 흔들고 집어던지며 왕에게 재주를 뽐냈다. 왕이 활을 쏘자 민첩하게 화살을 잡아버렸다. 왕이 명하자 몰이꾼들이 달려 나와 화살을 쏘았고 원숭이는 수많은 화살을 맞은 채 죽었다. 왕은 벗 안불의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 원숭이는 제 재주를 자랑하고 제 민첩함을 믿고 나에게 오만했으므로 이처럼 죽임에 처해진 것이다. 경계하라! 오! 너는 인주에게 교만한 태도가 없도록 하라!” 안불의는 고향으로 낙향하여 동오를 스승으로 삼고 얼굴 표정을 없애버리고 풍악을 멀리하고 영달을 거절했다. 삼 년이 되자 나라님들이 그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吳王浮於江 登乎狙之..

삶의나침반 2011.06.19

장자[167]

장자가 장례를 끝내고 혜자의 묘를 지나면서 따르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어느 미장이가 자기 코끝에 백토를 바르니 파리 날개와 같아지자 석공으로 하여금 그것을 깎아내게 했다. 석공이 도끼를 휘두르면 바람이 일고 들리는 것은 깎이는 소리뿐, 백토가 다 깎여도 코는 상하지 않으며 미장이는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다 한다. 송나라 원군이 그 소문을 듣고 석공을 불러 말했다. ‘시험 삼아 과인을 위해 그것을 해보아라.’ 석공이 말했다. ‘신은 일찍이 그처럼 깎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신의 기술을 시험할 상대가 죽은 지 오랩니다. 신의 짝인 미장이가 죽은 이래 신과 짝을 삼을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도 혜자가 죽으니 더불어 담론할 사람이 없구나!” 莊子送葬 過惠子之墓 顧謂從者曰 영人堊慢其鼻..

삶의나침반 2011.06.03

장자[166]

농부는 농사일이 없으면 즐겁지 않고 장사치는 장사 일이 없으면 즐겁지 않다. 서민들은 아침저녁 생계가 마련되면 부지런하고 공장 일꾼들은기계와 기술이 있으면 기운이 난다. 돈과 재산이 쌓이지 않으면 탐욕자는 근심하고 권세가 더해지지 않으면 과시하려는 자는 슬프다. 이처럼 세력과 외물을 좇는 자들은 변란을 즐기고 때를 만나야 소용되므로 무위자연할 수 없다. 이들은 세상 형편에 따르며 순종할 뿐 변화에 물物처럼 자정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육체와 성정을 쫓기게 하여 만물을 골몰하게 하면서 종신토록 돌아올 줄 모르니 슬픈 일이다. 農夫無草萊之事 則不比 商賈無市井之事 則不比 庶人有旦暮之業 則勸 百工有器械之巧 則壯 錢財不積 則貪者憂 權勢不尤 則誇者悲 勢物之徒樂變 遭時有所用 不能無爲也 此皆順比於歲 不物於易者也 馳其形性..

삶의나침반 2011.05.26

장자[165]

황제가 말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그대의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으나 청컨대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묻고 싶소.” 동자는 사양했으나 황제가 다시 묻자 입을 열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어찌 말 먹이는 일과 다르겠소? 역시 말을 해치는 일을 제거하는 일일 뿐이오.” 황제는 머리 조아려 재배하며 천사라 호칭하였다. 그리고 대외를 방문하려던 계획을 그만두고 되돌아왔다. 黃帝曰 夫爲天下者 則誠非吾子之事 雖然 請問爲天下 小童辭 皇帝又問 小童曰 夫爲天下者 亦奚以異乎牧馬者哉 亦去其害馬者而已矣 黃帝再拜계首 稱天師而退 - 徐无鬼 3 황제가 산신령인 대외를 만나려고 구자산으로 갈 때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말을 모는 동자(童子)를 만난다. 길을 묻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범상치 않음을 알아본 황제가 어린 동자에게 나라를 ..

삶의나침반 2011.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