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167]

샌. 2011. 6. 3. 17:17

장자가 장례를 끝내고 혜자의 묘를 지나면서
따르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어느 미장이가 자기 코끝에 백토를 바르니
파리 날개와 같아지자
석공으로 하여금 그것을 깎아내게 했다.
석공이 도끼를 휘두르면 바람이 일고
들리는 것은 깎이는 소리뿐,
백토가 다 깎여도 코는 상하지 않으며
미장이는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다 한다.
송나라 원군이 그 소문을 듣고 석공을 불러 말했다.
‘시험 삼아 과인을 위해 그것을 해보아라.’
석공이 말했다.
‘신은 일찍이 그처럼 깎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신의 기술을 시험할 상대가 죽은 지 오랩니다.
신의 짝인 미장이가 죽은 이래
신과 짝을 삼을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도 혜자가 죽으니 더불어 담론할 사람이 없구나!”

莊子送葬 過惠子之墓
顧謂從者曰
영人堊慢其鼻端
若蠅翼
使匠石착之
匠石運斤成風
聽而착之
盡堊而非不傷鼻
영人立不失容
宋元君聞之 召匠石曰
嘗試爲寡人爲之
匠石曰
臣則嘗能착之
雖然 臣之質死久矣
自夫子之死也
吾无以爲質矣
吾無與言之矣

- 徐无鬼 5

장자와 혜자는 같은 시대를 살았다. 생몰연대가 정확하지는 않으나 장자는 BC 370-300, 혜자는 BC 380-310 경으로 추정된다. 혜자가 장자보다 열 살 가량 많은 셈이다. 혜자는 본명이 혜시(惠施)로 명가(名家)를 대표한다. 박식하고 말솜씨가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말과 논리로 시비를 가리기 때문에 시비를 초월한 장자와는 의견이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장자>에는 장자와 혜자의 대화가 여러 번 나오지만 변설로 이기고 명성을 얻으려는 혜자의 입장은 늘 비판의 대상이다. 모순 되면서 진리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혜자의 장례식에 참석한 장자는 미장이와 석공의 비유를 들어 재주 많은 친구를 잃은 슬픔을 표시하고 있다. 서로 논쟁을 자주 했지만 둘은 진리를 사랑한 도반이었다. 서로 의견은 달랐어도 같은 방향을 바라본 벗이었다. 혜자가 죽으니 담론할 사람이 없어졌다고 장자는 한탄한다. 미장이와 석공의 비유가 말하는 것은 서로간의 믿음이다. 미장이는 석공을 믿기에 도끼가 코를 스쳐 지나가도 미동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기술이 가능한 것은 미장이나 석공 혼자만으로는 안 된다. 장자가 혜자와의 관계를 미장이와 석공에 비유한 것은 둘 사이에 그만큼의 신뢰가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특히 진리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로서의 신뢰였다. 겉으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은 서로를 성장시켜주는 도반이며 맞수였을 것이다. 명가(名家)니 도가(道家)니 하는 이름은 빈 껍데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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