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禪林)으로 가는 길은 멀다 미천골 물소리 엄하다고 초입부터 허리 구부리고 선 나무들 따라 마음의 오랜 폐허를 지나면 거기에 정말 선림이 있는지 영덕, 서림만 지나도 벌써 세상은 보이지 않는데 닭 죽지 비틀어 쥐고 양양 장 버스 기다리는 파마머리 촌부들은 선림 쪽에서 나오네 천 년이 가고 다시 남은 세월이 몇 번이나 세상을 뒤엎었음에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근 농가 몇 채는 아직 면산(面山)하고 용맹정진하는구나 좋다야, 이 아름다운 물감 같은 가을에 어지러운 나라와 마음 하나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소처럼 선림에 눕다 절 이름에 깔려 죽은 말들의 혼인지 꽃이 지천인데 경전이 무거웠던가 중동이 부러진 비석 하나가 불편한 몸으로 햇빛을 가려준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여기까지 오는데 마흔아홉 해가 걸렸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