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6

오래된 생각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2009년 5월에 고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유서다. 대통령이기 이전에 고뇌 속 한 인간이 남긴 마지막 말에 가슴이 짠해진다. 이 책은 대통령을 옆에서 모신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소설 형식을 빌려 쓴 노 대통령에 대한 회고 기록이다. 은 기득권 세력만 아니라 여권으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한 고독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말대로 육백 년 기회주의 역사를 청산하겠다고 대통령..

읽고본느낌 2022.05.02

유언 / 류근

절대로 남에게 베푸는 사람 되지 말아라. 희생하는 사람 되지 말아라. 깨끗한 사람 되지 말아라. 마음이 따뜻해서 남보다 추워도 된다는 생각하지 말아라. 앞서 나가서 매맞지 말아라. 높은 데 우뚝 서서 조롱 당하지 말아라. 남이 욕하면 같이 욕하고 남이 때리면 같이 때려라. 더 욕하고 더 때려라. 남들에게 위로가 되기 위해 웃어주지 말아라. 실패하면 슬퍼하고 패배하면 분노해라. 빼앗기지 말아라. 빼앗기면 천배 백배로 복수하고 더 빼앗아라. 비겁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비겁해라.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하느님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큰 교회 다녀라. 세상에 나쁜 짓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부끄러운 짓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양심과 선의는 네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라. 네가 나서지 않아도..

시읽는기쁨 2020.07.22

나의 임종은 / 김관식

남향 미닫이, 재양한 마루끝에 귀여운 젖먹이 무릎에 안고 앉아 조용히 엄마의 얼굴처럼 화색이 되는 자애로운 하늘 아래 하찮은 미물들과 푸나무 떨기조차 은총에 젖어 축복을 받는 오늘은 춘분! 낮과 밤이 같은 날. 나의 임종은 자정에 오라! 가장 소중한 손님을 맞이하듯 너를 위해 즐겨 마중하고 있으마 비인 방에 호올로 누워 천고의 비밀을 그윽히 맛보노니... 가여운 아내 아들딸들아. 아이예, 불쌍한 울음일랑 들레지 말라. 그동안 신세끼친 여숙을 떠나 미원한 본택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벌판에 내던지면 소리개와 사갈의 밥이 될 게고 땅에 묻으면 아미와 구더기의 즐거운 향연. (발가숭이로 왔으니 발가숭이로!) 불타여. 피 빨아먹고 산 공변된 공변된 업이요 보가 아니오니까. 백운대 위에 세워 풍장을 해도숱연키야 하..

시읽는기쁨 2011.01.29

종시 / 박정만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종시(終詩) / 박정만 몇 해 전, 박정만 시인을 그린 TV 다큐멘터리를 아프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한국 시단에서 가장 순수하고 낭만적인 시인으로 꼽혔던 시인은 한수산 필화사건에 얽혀 단지 친구였다는 이유만으로 보안사에 끌려가 호된 고초를 겪는다. 야만의 시대였던 1981년의 일이었다. 폭력과 고문으로 심신이 망가진 시인은 술에 의지해 살며 무너져 갔다. 직장도 잃고, 아내도 떠나가고,모든 것을 잃은 그는 세 자식을 남겨둔 채 홀로 죽어갔다. 연약한 영혼이 감당하기에 한 시대는 너무나 잔인했다. 시인은 죽기 전 몇 달 동안 술을 양식으로 삼으며신 들린 듯 수백 편의 시를 썼다고 한다. 제목이 없는 이 시도 그가 죽고난 뒤 발견된 것이다. 그때 권좌에 앉아 호령하던..

시읽는기쁨 2009.10.09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나도 유언장을 써 놓을 필요를 느낀다. 죽음이란 게언제 어떤 방법으로 찾아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신이 말짱한 가운데 죽음을 맞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것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의 과정이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없게 된다면 가족에게는 미리 내 의사를 밝혀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유언장에는 현대 의료기술에 의한 생명 연장책에는 반대한다는 내용이 들어갈 것이다. 어떤 치명적인 병에 걸렸을 경우 자연스레 죽음에 이르는 길을 나는 택한다. 다만 병원으로부터는 고통을 줄이는 한도 안에서만 도움을 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장기기증에 대해서는 아직 입장이 명확하지 않다. 다른 생명을 살리는 차원에서는 공감하지만 인간의 생명이 기술적인 방법에 의해 조작되는 점은 ..

참살이의꿈 2009.08.18

권정생 선생의 유언장

권정생 선생의 2주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권정생 선생과는일면식도 없었지만 그분의 특별한 삶으로 인해 내 가슴에 늘 살아계신다. 권 선생과는 생전에 한 번 뵈올 수도 있었다. 권 선생과 잘 아는 사이인 M이 언제 같이 한 번 찾아뵙자고 했는데 감히 내가 그분을 어떻게 하다가 기회를 놓쳤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때 염치 불구하고 안동으로 내려갔었더라면 싶다. 자신의 생각대로 삶을 사는 사람이야말로 위대하다. 우리 같은 범인들이야 생각 따로 행동 따로다. 책장에는 온갖 무소유와 비움과 청빈에 대한 책이 가득하지만 삶은 그와 정반대다. 정신으로는 그런 척 하지만 몸은 물질의 단맛에 빠져 있다. 자신의 소유와 욕구를 버린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그러나 권 선생은 일생을 그렇게 사셨다. 말하고 글 쓰..

참살이의꿈 2009.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