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7

어느 청소노동자의 죽음

며칠 전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이다. 이런 서울대가 부끄럽다 / 송현숙 논설위원 모멸감. 업신여김과 깔봄을 당하여 느끼는 수치스러운 느낌. 지난달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쫓는 내내 떼어낼 수 없었던 감정은 이 세 글자였다. 어제까지 일하던 직원의 죽음을 한사코 모른 체하려는 그 조직의 모습에, 고인이 생전 느꼈을 감정이 어땠을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난달 26일 아침, 남편과 함께 출근했던 59세 서울대 청소노동자는 퇴근하지 못했다. 막내딸과의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동료들은 당시 힘들고 멍한 고인의 얼굴을 기억했다. 평소 별다른 지병 없이 건강했던 그는 관악학생생활관(서울대 925동·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건 사망 열흘 만이었다. 가족..

참살이의꿈 2021.07.25

Me Too

연말이 되어 올해의 키워드를 뽑는다면 '미투'(Me Too)가 단연 으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올 초에 서지현 검사의 고백으로 시작된 미투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숨어 지내던 여성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작년 10월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사건의 폭로를 계기로 연예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수십 명의 여성 배우들에게 성추행과 성폭력을 저질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세상이 시끄럽긴 하지만 미투 운동은 인류 의식이 한 단계 진보하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미투 운동의 본질은 성이 아니라 권력이다. 권력을 이용한 갑질이 여성에게 향할 때 성희롱이나 성폭력으로 나타난다. 미투 운동은 4년 ..

길위의단상 2018.03.04

무릎 꿇리지는 말았어야 했다

사진 한 장이 가슴을 울린다.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은 사진이다. 어제 서울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는데 주민들의 항의로 무산되었다. 서울시교육청은 가양동 옛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지적장애인 140명이 다닐 수 있는 특수학교 설립을 4년 전부터 추진해 왔다. 이런 소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수학교가 들어선다 하면 주민 반대 데모가 벌어진다. 이 때문에 서울 지역에서는 지난 15년간 공립 특수학교가 한 군데도 생기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서울에서 특수교육이 필요한 장애학생은 1만 명이 넘는다. 이중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4천여 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통학하는데 두 시간 넘게 걸리는 경우도 많다...

참살이의꿈 2017.09.09

변호인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즈음에 이 영화를 보았다. 가슴 찡한 감동이었다. 신인 감독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빈틈없이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배우들 중에서는 특히 송강호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1981년에 일어났던 대표적 용공조작인 부림 사건을 모델로 했다. 노무현 역인 송우석 변호사를 송강호가 맡았다. 그러나 특정인을 넘어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 주는 영화였다. 돈만 좇던 송우석 변호사는 국가 폭력의 실상을 접하고 억울한 피고인들을 위한 변론에 온몸을 던진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군사 정권이 저지른 만행이 그를 통해 드러난다. 이 영화는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곰곰 생각하게 한다.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서슴지 않고 용공죄를 만들고 고문을 하는 경찰이 있다. 그는 살인 정권..

읽고본느낌 2014.01.18

날아라 펭귄

기분전환을 할 겸 영화 '날아라 펭귄'(임순례 감독)을 보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인권영화라 하여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영화는 네 개의 에피소드로 되어 있다. 초등학생 아이의 교육에 올인하는 엄마와 힘들어하는 아이, 채식주의자면서 술을 못하는 신입사원의 힘든 회사 생활, 자식들과 마누라를 미국에 보낸 기러기 아빠 이야기, 노부부의 갈등과 황혼이혼 이야기가 순서대로 전개된다. 부와 사회적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이면에는 고통 받고 소외된 이들이 있다.영화는 지금 우리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성케 한다. 학원을 대여섯 개나 다니면서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는 초등학생 아이는 식물을 가위로 자르고 거북이를 높은 데서 떨어뜨리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욕구불만을..

읽고본느낌 2009.10.18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이 오늘 사퇴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을 집행하는 분야에서 물갈이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인권이나 방송, 예술은 사정이 다르다. 그것은 정권과는 독립된 기관이어야 하고 정부의 간섭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 정권은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KBS 사장을 교체하고, 지난 5월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황지우 총장 사퇴시키더니 이번에는 인권위원장까지 물러나게 만들고 있다. 겨우 꽃을 피우는가 싶던 민주와 인권이 이 정권들어 다시 10년 전으로 후퇴하고 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고, 답답하고 슬픈 현실이다. 안 위원장은 이임사에서 개인적인 비애와 모멸감을 밝혔다. 그리고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고 일갈했다. 다음은 이임사 전문이다. --------------------..

길위의단상 2009.07.08

착하게 사는 것은 쉬운 일이다

돌프 페르로엔이 쓴 ‘2백 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는 14살 마리아의 일기 형식으로 된 작은 책이다. 1시간 안에 읽을 수 있지만 책이 시사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마리아의 부모는 마리아가 열네 살이 되자 생일 파티를 성대하게 열어준다. 마리아는 멋진 선물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제일 놀라운 선물은 어린 노예 소년 꼬꼬와 채찍이다. 꼬꼬는 접시에 담겨져 식탁에 올려진다. 이 책의 시대 배경은 19세기이고, 마리아는 네델란드의 식민지였던 네델란드령 가이아나에서 대규모 커피 농장을 경영하는 부유한 농장주의 외동딸이다. 천진난만한 소녀 마리아와 가족들이 노예를 경멸하고 인종적 우월감에 젖어 있는 것은 그 시대의 일반적인 의식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다. 백인들에게서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으..

읽고본느낌 2009.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