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 7

사람의 몸값 / 임보

금이나 은은 兩으로 따지고 돼지나 소는 斤으로 따진다 사람의 몸값은 일하는 능력으로 따지는데 日給 몇 푼 받고 일하는 사람도 있고 年俸 몇 천만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 한푼의 동전에 고개를 숙이는 거지도 있고 몇 억의 광고료에 얼굴을 파는 배우도 있다 그대의 몸값이 얼마나 나가는지 알고 싶은가? 그대가 만일 몇백의 돈에 움직였다면 몇백 미만이오 몇억의 돈에도 움직이지 않았다면 몇억 이상이다 세상에는 동장의 자리 하나에도 급급해하는 자가 있고 재상의 자리로도 움직일 수 없는 이도 있다 사람의 몸값은 세상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가 결정한다 - 사람의 몸값 / 임보 얼마 전에 모 그룹 회장이 일당 5억짜리 노역 판결을 받았다가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벌금 254억 원을 내지 못할 경우 노역형에..

시읽는기쁨 2014.04.19

아내의 전성시대 / 임보

왜 법대생들이 그렇게 좋아했던가 몰라요 고시공부 하는 놈들이 공부는 않고 쫓아다니기만 했으니 아내의 회고담이 또 시작된다 한두 놈이 아니었다고 은근히 으스대는 투다 '법대생'이라는 말도 내 비위에 거슬린다 지금쯤 잘된 놈은 변호사가 되어 떵떵거리며 지내지 않겠는가 (하기사 못 된 놈은 복덕방에서 어정거리고 있겠지만) 키는 180도 넘은 멀대같은 놈들이 늘 따라다녔단 말이요 키가 180이라는 말에 또 야코가 죽는다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대꾸도 않고 숟가락질만 해댄다 수십 번을 들은 얘기이므로 다 알고 있는데 무슨 미련이 있는지 오늘도 점심을 먹다말고 어떤 친구 얘기 끝에 그녀는 자신의 황금시절을 회고하고 있는 중이다 매일 대문 밖에까지 따라와서 어정거리니 어쩌겄오? 다음엔 삼촌이 나와서 쫓아보냈다는 얘기..

시읽는기쁨 2012.09.01

바보 이력서 / 임보

친구들은 명예와 돈을 미리 내다보고 법과대학에 들어가려 혈안일 때에 나는 영원과 아름다움을 꿈꾸며 어리석게 문과대학을 지원했다 남들은 명문세가를 좇아 배우자를 물색하고 있을 때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자란 현모양처를 구했다 이웃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강을 넘어 남으로 갔을 때 나는 산을 떨치지 못해 추운 북녘에서 반평생을 보냈다 사람들은 땅을 사서 값진 과목들을 심을 때 나는 책을 사서 몇 줄의 시를 썼다 세상을 보는 내 눈은 항상 더디고 사물을 향한 내 예감은 늘 빗나갔다 그래서 한평생 내가 누린 건 무명과 빈곤이지만 그래서 또한 내가 얻은 건 자유와 평온이다 - 바보 이력서 / 임보 행인지 불행인지 지금까지 이력서란 걸 거의 써보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자동으로 취직이 되었고, 그 뒤로는..

시읽는기쁨 2010.01.31

새들을 날개 위에 올려라 / 임보

새는 날개로 허공을 받치고 떠오를 때 새다 새는 높은 나뭇가지 위에 올라 반짝이는 눈으로 지상을 응시할 때 새다 버려진 먹이를 찾아 인가의 주변을 서성거리거나 먹다 남은 먹이를 얻으려 육식동물의 곁을 어정거리는 놈들은 이미 새가 아니다 철원에 가서 겨울 독수리 떼를 보았는데 인간들이 던져둔 고기에 취해 검은 쉼표들처럼 빈 들판에 날개를 접고 있었다 상원사에 가서 고운 멧새들을 보았는데 방문객들의 손바닥에 올라 스스럼없이 모이를 쪼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새가 아니라 가금(家禽) 언젠가는 닭처럼 날개를 잃게 되리라 간악한 인간의 손들이여 새의 날개를 꺾지 말고 그들을 맑은 날개 위에 올려라 - 새들을 날개 위에 올려라 / 임보 지난 여름, 광릉수목원에서 기르던 늑대가 우리를 탈출했다. 그리고 다음 날 사살되..

시읽는기쁨 2009.10.14

등짐 / 임보

꿈에서는 그 꿈이 꿈인 줄 모르듯이 우리 사는 이 세상도 아마 그런갑다 꿈에서 얽힌 일들 깨고 나면 다 풀리듯 이 세상 근심 걱정도 깨고 나면 다 풀릴 걸 등짐만 공연히 지고 등이 휘게 가는 갑다 - 등짐 / 임보 살아 생전 고된 날들의 연속이었던 외할머니, 돌아가신 뒤 가장 편안한 얼굴을 보이셨다. 등짐을 내려놓으니 그리 마음 편하셨나 보다. 삶이 버겁고 힘들지 않은 사람 어디 있으랴. 모두들 무거운 등짐 하나씩 지고 사막길을 걸어간다. 그러나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스스로 자청해서 진 등짐이고, 근심 걱정 또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던가. 그것이 인생이다. 죽어서야 벗어놓을 수 있는 등짐 하나씩 지고 우리는 살아간다.그 안에는 등이 휘어질 듯 무거운 돌맹이가 들어있다. 다들 돌맹이를 황금..

시읽는기쁨 2009.09.10

치마 /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 치마 / 문정희 생물학적으로 볼 때 남과 여, 그다사다난함의 배..

시읽는기쁨 2009.07.15

마누라 음식 간보기 / 임보

아내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때마다 내 앞에 가져와 한 숟갈 내밀며 간을 보라 한다. 그러면 "음, 마침맞구먼, 맛있네!" 이것이 요즘 내가 터득한 정답이다. 물론, 때로는 좀 간간하기도 하고 좀 싱겁기도 할 때가 없지 않지만- 만일 "좀 간간한 것 같은데" 하면 아내가 한 입 자셔 보고 나서 "뭣이 간간허요? 밥에다 자시면 딱 쓰것구만!" 하신다. 만일 "좀 삼삼헌디" 하면 또 아내가 한 입 자셔 보고 나서 "짜면 건강에 해롭다요. 싱겁게 드시시오." 하시니 할말이 없다 내가 얼마나 멍청한고? 아내 음식 간 맞추는 데 평생이 걸렸으니 정답은 "참 맛있네!"인데 그 쉬운 것도 모르고.... -마누라 음식 간보기 / 임보 마눌님 눈치 보는 일이 잦아졌다. 나이가 들면서 고개 숙인 남자가 되는 건 자연의 필연 ..

시읽는기쁨 2009.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