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7

자작나무숲으로 가서 / 고은

광혜원 이월마을에서 칠현산 기슭에 이르기 전에그만 나는 영문 모를 드넓은 자작나무 분지로 접어들었다누군가가 가라고 내 등을 떠밀었는지 나는 뒤돌아보았다아무도 없다 다만 눈발에 익숙한 먼 산에 대해서아무런 상관도 없게 자작나무숲의 벗은 몸들이이 세상을 정직하게 한다 그렇구나 겨울나무들만이 타락을 모른다 슬픔에는 거짓이 없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오래오래 우리나라는 여자야말로 울음이었다 스스로 달래어온 울음이었다자작나무는 저희들끼리건만 찾아든 나까지 하나가 된다누구나 다 여기 오지 못해도 여기에 온 것이나 다름없이자작나무는 오지 못한 사람 하나하나와도 함께인 양 아름답다 나는 나무와 나뭇가지와 깊은 하늘 속의 우듬지의 떨림을 보며나 자신에게도 세상에도 우쭐해서 나뭇짐 지게 무겁게 지고 싶었다..

시읽는기쁨 2024.06.01

서후리숲 소풍

아내와 양평에 있는 서후리숲으로 소풍을 갔다. 점심은 외식을 할까도 했지만 소풍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부러 집에서 김밥을 싸 가지고 갔다. 비 그치고 더없이 맑고 청명한 봄날이었다. 2014년에 개장한 서후리숲은 양평군 서종면 서후리에 있는 10만 평 규모의 사설 수목원이다. 수목원 안에는 자작나무숲 등 다양한 나무의 숲이 있으며 되도록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 채 가꾸고 있다. 입장료는 8천 원이다.  카페 옆에 삼색버드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플라밍고 셀릭스(Flamingo Salix)인데 흰색, 분홍, 초록색으로 된 잎 색깔의 조화가 신비하게 어우러져 눈길을 사로잡았다. 주택의 정원에 심으면 무척 예쁠 것 같다.  숲에는 이 계절에 맞는 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댕강나무꽃의 향기에 취한 건 ..

사진속일상 2024.05.28

잎 떨군 자작나무

자주 다니는 나지막한 뒷산에서 길을 잃었다. 자작나무를 보러 가는 길이었는데 귀신에 홀리듯 진입로를 착각한 것이었다. 눈에 익은 데서도 이럴진대 큰 산이라면 어떠하겠는가. 늙어 총기가 흐려진다는 걸 산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뒷산에는 자작나무 군락지가 있다. 주 등산로에서 벗어난 3부 능선쯤에서 자란다. 수령이 오래 되지 않아서 감탄사가 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가까이서 자작나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나는 자작나무를 좋아해서 밤골 생활을 할 때는 집 뒤에 자작나무를 10그루 정도 열을 맞춰 심었다. 오류선생(五柳先生) 도연명의 흉내를 내 본 것이다. 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되돌아갈 수 없게 많이 내려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아랫마을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제대로 된 길로 올라가..

사진속일상 2023.11.20

뒷산 자작나무

동네 걷기를 하다가 산 능선을 넘어 이웃 동네로 가는 길을 택했다. 처음 가 보는 길이었는데 내려가는 산길에서 자작나무 군락지를 발견했다. 약 300평 정도 되는 면적에 자작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줄기가 굵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만큼 자라자면 10년은 족히 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자작나무를 좋아해서 밤골 집 뒤에 울타리 겸 해서 10여 그루를 심은 적이 있었다. 지금도 있다면 벌써 20년도 더 되었으니 상당한 크기로 자랐을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심었던 그 나무만은 다시 만나보고 싶다. 어쨌든 뒷산에서 뜻밖에 만난 자작나무가 무척 반가웠다. 처음 걷는 길은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어서 좋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녔을 길 위에 나도 발을 포개며 동참한다. 길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다져지는 것이다..

사진속일상 2023.02.14

원대리 자작나무 숲

알록달록 단풍도 좋지만 하얀 자작나무 숲의 가을도 아름답다. 자작나무를 보러 강원도 인제까지 먼 길을 달렸다. 가는 길에 잠시 용문사에도 들렀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이제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평일인데도 원대리 주차장은 만원이었다. 한 시간 정도 임도를 따라 오르면 인공 조림한 이 자작나무 숲에 이른다. 자작나무 하면 백두산에 갔을 때 버스로 관통해 간 자작나무 숲이 잊히지 않는다. 본 고장의 자작나무와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이만하면 이국적인 느낌이 들기에 넉넉하다. 이곳은 자작나무 숲을 중심으로 네 개의 탐방로가 만들어져 있어 다양한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원정임도, 1코스, 3코스, 원대임도를 돌아오는 짧은 코스를 택했지만 시간 여유가 있다면 2코스와 4코스를 포함하는 트레킹을 ..

사진속일상 2015.10.29

자작나무의 입장을 옹호하는 노래 / 안도현

저 도시를 활보하는 인간들을 뽑아내고 거기에다 자작나무를 걸어가게 한다면 자작나무의 눈을 닮고 자작나무의 귀를 닮은 아이를 낳으리 봄이 오면 이마 위로 새 순 새록새록 돋고 가을이면 겨드랑이 아래로 가랑잎 우수수 지리 그런데 만약에 저 숲을 이룬 자작나무를 베어내고 거기에다 인간을 한 그루씩 옮겨 심는다면 지구가, 푸른 지구가 온통 공동묘지 되고 말겠지 - 자작나무의 입장을 옹호하는 노래 / 안도현 저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 중에서 자작나무를 닮은 사람이 많아진다면 도시는 푸른 숲의 향기로 가득할 거야. 칙칙한 매연 대신에 신선한 산소가 거리를 감싸고 사람들은 이제 심호흡을 크게 할 거야. 잿빛 도시에 꽃이 피어나고, 예쁜 새들이 찾아와 노래할 거야. 사람들의 마음도 꽃처럼 환하게 피어나고,새들 따라서 ..

시읽는기쁨 2004.09.06

자작나무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너머는 평안도땅도 뵈인다는 이 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白石의 이 시 한 구절 때문에 나는 어느 날 자작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 자작나무를 본 적도 없었지만 왠지 자작나무가 다정하게 다가온 것이다. 사진으로 본 새하얀 수피와 가을이면 노랗게 물드는 나뭇잎은 이름 그대로 그렇게 품위있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자작나무의 남방 한계선 아래에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이 나무가 무척 귀한데 북쪽 지방에서는 땔감으로 사용한다니..... 불에 탈 때는 자작 자작하고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자작나무 숲이 망망대해로 펼쳐져 있다..

꽃들의향기 2003.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