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4

하급반 교과서 / 김명수

아이들이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 나는 물끄러미 그 소리를 듣고 있다 한 아이가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딴 아이도 따라서 책을 읽는다 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 “아니다 아니다!” 하고 읽으니 “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대로 따라 읽는다 이 봄날 쓸쓸한 우리들의 책 읽기여 우리나라 아이들의 목청들이여 - 하급반 교과서 / 김명수 참여연대 앞의 거리가 연일 보수단체의 시위로 시끄럽다. 천안함 조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참여연대가 유엔 안보리에 서한을 보낸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북한을 제재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 딴지를 걸었다는데서 분노를 느끼는 모양이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자신과 ..

시읽는기쁨 2010.06.21

1 번

우연치고는 참으로 절묘하지 않니? 어뢰 파편에 적혀있다는 파란색의 '1 번'이라는 글씨 말이야. "찍어 찍어 1 번 좋아 1 번 좋아 파란당 파란당이야 무조건 무조건이야." 적개심과 불안을 부추기고, 간첩도 잡고, 전교조도 때려잡고, 이러면서 그날을 향하여 점점 에스컬레이터 시키겠지. 정점을 향해. 어제 MB는 전쟁기념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어. 왠지 소름이 끼치더라. 그러나 난 내기 걸 수 있어. 그날이 지나면 흐지부지될 거라는 걸. 이런 걸 보면 역사는 코미디 같아. 우린 그 소극(笑劇)의 꼭두각시, 그런데 찬 바람이 너무 거세다. 슬프고 우울해. 많이 슬프고 우울해.....

길위의단상 2010.05.25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않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수선화에게 / 정호승 그런 시절이 있었다. 너무 외롭고 답답했다.내 속마음을 들어줄 사람 하나도 없었다. 술만 마시면 눈물을 흘렸다. 그때 이 시의 따스한 손길에 또 울었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싯구 하나하나가 가슴에 파고들었..

시읽는기쁨 2010.05.08

조금새끼 / 김선태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 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냐고요? 아시다시피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 달 후 밖으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은 훗날 아버지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웃음..

시읽는기쁨 2010.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