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4

[펌] 도구적 영성

'영성'은 기독교와 함께 본격화했다. 예수가 떠난 후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하느님 뜻대로 살아가는 영적(spiritual) 삶을, 개인의 만족, 안락, 성공을 좇은 육적(fleshly) 삶과 대비했다. 자발적 가난, 사유 재산이 없는 평등한 공동체, 새로운 세상의 갈구, 인류에 대한 헌신 등은 그들이 구현한 영적 삶의 모습들이다. 예수는 하느님과 부(마몬)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고, 아예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부를 좇는 일을 죄악시했다기보다, 애초에 길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사실 그렇다. 물질적 풍요보다 영적 풍요를 중시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의 체제를 외면하지 않고 산다면 부자가 될 방법이 있는가. 1500년 후 예수의 메시지는 도래할 세상(자본주의)에 커다란 걸림돌이 ..

참살이의꿈 2024.01.04

[펌] 한겨레 칼럼 셋

목표는 ‘생존’이다 / 김별아 얼마 전, 죽을 뻔했다. 말 그대로 유명을 달리해 황천으로 갈 뻔했다. 이러구러 지극히 평범한 오후였다. 동네에 볼일이 있어 실내복에 점퍼만 달랑 걸친 채로 털레털레 집을 나선 길이었다. 그런데 막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머리 위에서 무언가 서늘한 기운이 빠르게 내리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아차, 입에서 절로 튀어나온 외마디 비명과 함께 어느새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옷깃을 스쳐 발밑에 뒹굴고 있었다. 쪼개진 나머지 반 토막은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의 보닛을 움푹 찌그러뜨렸고, 주위에서 “누구야? 사람이 죽을 뻔했잖아!” 하는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베란다에서 얼음덩이를 던진 누군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왜, 어쩌다가 살상의 무기가 될 수도 있..

길위의단상 2009.02.11

[펌] 신문 칼럼

한겨레신문(1/12)에 실린 칼럼 두 편을 옮깁니다. 다시는 아이가 되지 말렴 / 오수연(소설가) 어른이 되면 아이가 아니다. 아이가 아니어도 괜찮아서 나는 나이든게 다행스럽다. 어린 시절 나는 죄수였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였다.)에 입학하는 날, 어머니는 아기로만 알았던 막내가 또래들 중 키가 큰 편이라서 놀랐다. 나는 키 순서에 따라 뒷줄에 서서 ‘앞으로 나란히’를 수십 번 하고, 구령에 맞춰 교실로 들어가, 마찬가지로 뒷줄 딱딱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너무나 긴 세월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어린이들의 지력과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 45분의 수업이 15분의 휴식 시간을 두고 반복되었다. 받아쓰기가 거의 전부였던 수업 내용이야 둘째치고, 수업 시간 동안 우리는 짝을 건드려도, 창 밖..

길위의단상 2004.01.13

[펌] 신문 칼럼

한겨레신문 신년호에 실린 칼럼 두 편을 옮깁니다. 경제종교 / 황대권(생태공동체운동센터 대표) 오늘 아침 신문을 들추다가 열두 살 어린 아이가 천만 원을 모았다는 책을 선전하는 광고를 보고 가슴이 덜컥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제 어른들의 광포한 돈 놀음이 아이들의 영혼까지 갉아먹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다가올 미래가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도대체 아이가 천만원씩이나 모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단돈 만원에도 신의를 밥 먹듯 저버리는 세상 인심을 모르고 이런 일을 기획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아주 어릴 때부터 돈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겠지. 아직 읽어보지도 않고 책에 대해 긴 얘기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충격적인 광고카피만으로도 ..

길위의단상 2004.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