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61

풍경(56)

모래톱에서 휴식을 취하던 오리들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스르르 몸을 일으켜 물로 피한다. 멀리서는 백로 두 마리가 한가로이 먹이를 기다리고 있다. 슬로우 모션을 보는 듯한 늦여름 오후의 경안천 풍경이다. 손님을 기다리다 지친 무수리 나루터의 줄배는 오수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 번잡한 세상에서 조금만 발길을 옮겨도 이런 천고수청(天高水靑) 속 적막강산이 있다.

사진속일상 2024.09.04

풍경(51)

몸 안이든 밖이든 누구나 가시를 가지고 있다. 가시는 잠복해 있다가 불시에 깨어나 찌른다. 불가항력이다. 가시가 고통을 주지만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쳐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어젯밤은 잠을 설치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붙였다. 바람을 쐬러 경안천 습지생태공원에 나갔다. 늦가을 풍경이 일말의 위로가 되었다. 경안천에 나간 것은 고니가 돌아왔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산책로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 뒤에 십여 마리의 고니가 보였다. 올해 경안천에 맨 처음 도착한 선발대 무리일 것이다. 가을이 가는 스산한 계절이어선지 천변에는 산책 나온 사람이 드물었다. 시야를 가리던 나뭇잎이 떨어지니 경안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묵묵하게 세월을 견디며 성장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대견하다.

사진속일상 2022.11.19

풍경(49)

도시를 지나는 하천은 빌딩에 둘러싸인 채 인공의 수로로 변해 자연스럽지 않다. 하천은 주변의 산과 어우러져야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다행히 경안천은 아직 하천 본래의 모습이 남아 있다. 이런 풍경 속에 있으면 아늑해지면서 가슴이 훈훈해진다. 자연에서 받는 위안만큼 따스한 것도 없다. 괜스레 마음이 헛헛한 날, 경안천의 겨울 풍경 속에 들다.

사진속일상 2022.01.09

풍경(41)

아파트 외벽 도색 작업을 하는 사람을 본다. 좌우로 시계추처럼 흔들거리며 손끝에서 그림이 완성된다. 얼마나 고될까, 안쓰러우면서 식구를 먹여 살리는 노동 앞에서 숙연해진다. 누구나 제 인생의 그림을 그리며 살아간다. 사무실에 앉아있어도 외줄 타기의 긴장은 있다. 밥벌이를 위한 일상의 노동은 장소가 어디든 숭고하다. 때로는 삶이 비루해 보일지라도 땀 흘리며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 살아내라는 명령은 인간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 세상에 나와 제 몫을 한다는 것만큼 엄숙한 일도 없다. 육체노동이라고 괄시받아서는 안 된다. 힘든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그에 마땅한 대우를 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무슨 일을 하든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직업을 귀천으로 구별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우선이 사회가 되어야 한다.

사진속일상 2018.01.23

풍경(31)

흰 그림자.... 흑백필름을 현상하면 음영이 거꾸로 되어 나타난다. 거기에 빛을 비추어야 우리가 정상이라고 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림자가 꼭 검어야 할 당위는 없다. 뒤집힌 세계 역시 하나의 세계다. 필름의 기억이 떠올라 재미삼아 음영을 바꾸어 보았다.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으로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

사진속일상 2014.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