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60

올림픽공원 9경

며칠 전 서울에서 모임이 있어 나간 길에 올림픽공원에 들렀다. 10여 년 전 이 부근에 직장이 있었을 때는 자주 산책을 했던 곳이었다. 그때는 자투리 시간이 나면 이곳으로 나와 어슬렁거렸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서울 도심에 이렇게 넓은 녹지 공원을 만들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80년대 개발의 시대에 이런 발상을 했다는 게 대단하다. 그때와 비교하면 나무가 울창해진 게 가장 큰 변화다. 대신 새 건물이 자꾸 들어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왠지 공원이 자꾸 비좁아지는 느낌이다. 뭘 자꾸 만들고 꾸미기보다 자연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는 게 나아 보인다. 올림픽공원에 9경이 있다고 해서 이번 기회에 하나씩 찾아보았다. 지하철 몽촌토성역에서 시작하여 반대편으로 나가며 순서대로 만났다. 금방 ..

사진속일상 2013.05.13

스쳐 지나가는 풍경

아마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을 것이다. 외할머니를 따라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간 적이 있었다. 남산 자락 후암동 친척집이었는데 결혼식이 있었는지 집안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신기해서 내 또래 아이와 오리락내리락 하며 놀았던 기억이 희미하게 난다. 그러다가 굴러떨어져서 외할머니를 놀라게도 했다. 그때는 시커먼 몸통을 가진 칙칙폭폭 증기기관차가 객차를 끌었다. 쉴새없이 연기와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고 가끔씩 힘들다는 듯 목쉰 기적 소리를 토해냈다. 그것이 얼마나 좋은 구경거리였는지, 나는 객차 유리창문을 위로 열어놓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는 우리를 끌고가는 철마를 구경했다. 옆으로 끝없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도 좋았다. 잠시만 그런 게 아니라 서울 가는 내내 바깥 구경에 넋을 잃었다고..

길위의단상 2013.03.12

산길

앞산에서..... 산길은 산을 닮아 있다 산을 닮은 산길은 산을 배반하지 않는다 산이 둥글면 둥글게 길을 열고 산이 각지면 각지게 길을 열고 산의 높이만큼 산의 깊이만큼 오르내리면서 산과 함께 하고 산길은 나무를 사랑할 줄 안다 나무를 사랑할 줄 알아 나무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몸을 낮추고 겸손하게 나무들의 자리를 탐하지 않고 비어 있는 곳으로 다니고 산길은 사람을 알아본다 사람을 알아보기에 사람을 대할 줄 안다 성질 급한 사람은 급하게 걷다 지치게 만들어 천천히 가게 하고 차분한 사람은 차분하게 걷다 산 깊은 맛을 보게 하고 사람에 맞게 길을 가게 하고 산길은 산을 닮아서 좋고 산길은 나무를 사랑할 줄 알아서 좋고 산길은 사람을 알아봐서 좋고 그래서 산길은 있는 그대로가 좋다 - 산길 / 이대의 뒷산..

사진속일상 2012.09.14

우주의 풍경

(The Cosmic Landscape)은 '끈 이론'과 '메가버스'(Megaverse, 다중우주)를 주제로 한 교양과학서이다. 제목에 나오는 '풍경'은 보통명사가 아니라 끈 이론에서 유도되는 가능한 진공들의 공간을 말하는 과학 용어다. 메가버스로 대변되는 우주의 풍경에는 무한한 종류의 우주가 무한하게 출현할 수 있다. 이 책은 유니버스(Universe)에 익숙한 우리의 우주관을 깨뜨리는 혁명적인 개념을 소개한다. 책의 초반부에는 '인간 원리'에 대한 설명이 길게 나온다. 우리 우주는 왜 생명체가 존재하도록 설계된 듯 보이는 것일까? 자연법칙은 생명과 인간이 탄생되도록 미세 조정된 것처럼 보인다. 만약 자연법칙이나 물리상수 중 하나가 조금만 달라졌어도 우주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지 못하고 생명도 탄생할..

읽고본느낌 2012.07.16

풍경(12)

태풍이 지나간 오후, 한강변은 평화로웠다. 그러나,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에 들어서니 많은 나무들이 뿌리가 뽑히거나 줄기가 부러져 있었다. 오늘 아침의 태풍으로 나무들도 피해가 컸다. 누구는 무너지고, 누구는 살아남는다. 쓰러진 생명을 보고 너무 안타까워하지 말아라. 존재의 소멸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다시 숲을 채운다. 죽음이 새 생명을 잉태하는 것, 그것이 자연의 원리가 아니겠는가. . . . 그래도, 죽어가는 자는 슬프고, 살아남은 자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사진속일상 2010.09.02

풍경(3)

썰물 때 바닷가 갯벌은 생명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조수의 들고남에 따라 생명이 움직인 자국들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었다. 갯벌은 화판이 되고, 바다와 뭇 생명들은 신의 손이 되어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무엇하러 다니느라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 인간은 직선의 길을 만들지만 자연은 곡선을 만든다. 곡선은 부드럽다. 그리고 곡선에는 여유로움과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이 멋진 그림은 누가 그렸지? 어느 유명한 화가가그린 나무도 바다가 그린 이것 만큼 아름다운 것은 보지 못했다. 아마 바다는 진심으로 나무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나 보다. 이건 누구의 집이지? 흙을 파내서 둥글게 울타리를 쌓고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저 구멍 속으로 들어가면 따스한 스위트 홈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거기는 늘 파도 소리..

사진속일상 2006.06.17

풍경(2)

문정희 시인은 '효자동 길'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은행잎들 우수수 밀려와 가을이 되면 나는 효자동에 가고 싶어라 효자동 골목길은 오래된 향내가 묻어 있는 길이다. 거기에는 새로 개발된 주택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전적이며 낭만적인 분위기가 있다. 이런 효자동 골목길을 매일 지나다닐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축복받은 일이다. 효자동 골목길을 지나갈 때면 늘 눈길을 끄는 집이 있다. 밝고 화려하게 칠해진 빨간 대문집인데 저 집에는 왠지 작고 예쁜 사람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나도 저런 빨간 대문이 달린 집에 살고 싶어진다. 예전에 단독주택에 살 때 우리 집 대문 색깔은 어두운 녹색이었다. 2. 3 년에 한 번씩 새로 칠을 하면서 페인트 가게에 가서 꼭그 어두침침했던 색깔만 고집했다. 10..

사진속일상 2005.10.07

풍경(1)

인적 그쳐 한적한 바다에 가고 싶다. 키 큰 바다풀들이 바람에 날리고, 파도 소리 더욱 쓸쓸한 텅 빈 바닷가에 서고 싶다. 사는 건 외롭고 쓸쓸한 일이다. 호탕한 웃음과 화려한 몸짓으로 치장해보지만 세상 일은 여전히 힘겹고 홀로 감당해야 할 몫은 무겁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한데 작은 조각배 한 척 흔들거리며 집 찾아 들어오고 있다. 우리가 돌아갈 안식의 항구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피곤한 내 영혼이 쉴 한 평 따스한 자리가 거기엔 있을까? 거기선 내 고운 사람이 고운 옷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외로운 마음도, 쓸쓸해진 마음도, 좌절도, 낙담도 저 바다는 다 품어줄 것 같다. 아픔이 아픔으로 위로 받듯, 외로움은 더 큰 외로움으로 위안을 얻을 것이다. 오늘은 저 쓸쓸한 바다에 가고 싶다.

사진속일상 2005.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