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 43

논어[26]

자장이 물었다. "여남은 세대 뒷일을 알 수 있을까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은나라는 하나라 제도를 바탕 삼았으니, 거기서 거기 감직하고, 주나라는 은나라 제도를 바탕 삼았으니, 거기서 거기 감직한다. 주나라의 뒤를 잇는 자가 있다손 치더라도 비록 백 세대 뒷일일망정 알 수 있고말고." 子張問 十世可知也 子曰 殷因於夏禮 所損益可知也 周因於殷禮 所損益可知也 其或繼周者 雖百世可知也 - 爲政 16 주(周)나라는 공자에게 롤모델이 된 국가다. 공자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고 할 때의 '고(故)'는 아마 주나라의 제도나 문화를 가리키지 않았나 싶다. 주나라의 문물제도를 정비한 주공(周公)도 공자는 무척 존경했다. 꿈에서 주공을 자주 뵙지 못한 걸 슬퍼하는 대목도 에 나온다. 중국 역사에서 주나라가 과연 ..

삶의나침반 2013.04.12

까치의 집짓기

아파트 화단에 있는 소나무에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한 지 두 주일이 되었다. 까치 부부가 산에서 부지런히 잔가지를 물어와 둥지를 만든다. 워낙 밑으로 떨어지는 게 많아 별로 진도가 나가지 않더니 그래도 이만큼이나마 되었다. 까치는 집을 처음 지어보는지 서투르고 어설프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올라가서 도와주고 싶다. 하긴 부리만으로 쌓아올려야 하니 힘든 작업인 건 분명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무척이나 느리고 더딘 집짓기다. 집을 짓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는 다른 까치 한 쌍이 공격해 와서 서로간에 집을 차지하려는 쟁탈전이 며칠간 벌어졌다. 그럴 때는 네 마리가 얼마나 짖어대는지 온 아파트가 다 시끄러웠다. 지금은 질서가 잡혔고 조용해졌다. 많은 나무를 놔두고 하필 ..

사진속일상 2013.04.11

함석헌 읽기(9) - 씨알에게 보내는 편지 2

함석헌 저작집 9권에는 1975년부터 1980년까지 '씨알의 소리'에 실렸던 선생의 글이 모여 있다. 그중에서 재미있었던 내용 중 하나는 예수쟁이를 선생 나름대로 분류한 것이다. 종파에 따라 기독교를 가톨릭, 개신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으로 나누지만 실질상으로는 별 차이가 없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생활하는 것에 따라 분류한다면 다르게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의 분류는 다음과 같다. 1. 천당족 2. 성신족; 사실대로 말한다면 '무당족'이라고 해야 한다. 3. 은혜족; 은혜가 아니라 싸구려 안일주의다. 4. 향원족; 공자 이르시기를, 향원(鄕原)은 덕(德)을 어지럽히는 자들이라고 했다. 맹자는 향원을 풀이하기를, "비난하려고 해도 어디 꼬집을 데가 없고, 찌르려 해도 찌를 곳이 없어, 시..

읽고본느낌 2013.04.10

나는 누구인가?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인상적인 대사 중 하나가 장발장의 "나는 누구인가?"(Who am I?)라는 독백이다. 그는 자베르 경감을 피해 신분 세탁을 하고 시장이 되어 살아간다. 그러다가 다른 데서 장발장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하게 된다. 자신이 진짜 장발장이라고 고백하면 다시 감옥에 들어가고 모든 것을 잃는다. 숨기면 시장직을 유지하며 잘 살 수는 있으나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희생된다. 양심의 갈등으로 번민할 때 그가 스스로 묻는 말이 이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는 한 인간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자아 인식에 눈뜰 때 던지는 질문이다. 사춘기 열병의 원인도 결국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 때문이다. 평생을 두고 고뇌해야 할 화두를 받는 것이다. 그것은 질문으로 주..

참살이의꿈 2013.04.09

장난감 디카로 찍어본 봄꽃

얼마 전에 값싼 디카를 하나 샀다. 하이마트에 갔더니 10만 원짜리 카메라가 있는 것이었다. 가격으로 치면 딱 장난감 수준인데, 사진은 과연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서 재미로 갖고 와 보았다. 카메라는 손에 들었는지도 모르게 작고 가볍다. 기능도 아주 단순하다.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우선 찍힌 사진을 보니 색깔이 너무 칙칙하다. 채도 조절을 해 보지만 한계가 있다. 그리고 초점 잡는데 너무 헤맨다. 꽃 같은 접사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또, 사진 저장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성질 급한 사람은 열 받게 생겼다. 렌즈 탓이겠지만 사진의 선예도도 많이 떨어진다. 하여튼 나에게는 재미있는 카메라다. 그러려니 하고 찍으면 사용 못 할 것도 없다. 사진의 질을 따지지 않는다면 넉넉히 쓸 수 있다. 앞으로 외출..

꽃들의향기 2013.04.08

출석 부른다 / 이태선

1번 한우람 정다혜 2번 동사무소 앞 황매화 3번 경비실 옆 철쭉 4번 반지하 방 창문 얼룩 폭우 그친 이튿날 북한산 밑 쌍문1동 교실 반짝반짝 햇빛 선생님 출석 부른다 덥수룩한 어둑발이 쳐들어온다 마루 끝에 앉은 아버지 신을 벗어 턴다 소가 울지 않는다 옆집 도마질 소리 수돗가 펌프 소리 미지근한 수돗물 낮은 부뚜막 하수 냄새 외가의 쪽마루 고양이, 청승 맞게 울던 서울 냄새 멀미 노란 눈 속으로 고요히 골목 연탄 냄새 네 네 네 깊게 깊게 맑은 폭우 그친 다음 날 한우람 정다혜 뜸부기 소쩍새 세상 만물 대답한다 반짝 반짝 담벼락의 벽보도 내 마음의 얼룩도 - 출석 부른다 / 이태선 지난 주말에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봄 심술이 심했다. 오늘 아침은 햇빛 선생님 환한 얼굴로 출석부를 들고 들어오신다..

시읽는기쁨 2013.04.08

논어[25]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람이 실없으면 그래도 좋을까 몰라! 소 수레나 말 수레나 멍에 없이 그래도 끌고 갈 수 있을까?" 子曰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예 小車無월 其何以行之哉 - 爲政 15 문명이 발달하고 풍요로워졌지만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고독하고 우울하다. 가혹한 경쟁 시스템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적이 된 살벌한 세상이 되었다. 인간에 대한 존경이나 유대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로를 믿지 못한다. 가정이 무너지는 것도 가족 사이에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간에도 신뢰가 없다면 어떻게 되는지 지금의 남과 북 관계가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정과 신뢰가 있다면, 내 존재에 대해 세상에 대해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면, 가난이나 다른 어려움은 별로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삶의나침반 2013.04.07

일주일째

일주일째 문밖을 못 나가고 있다.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가 떠날 생각을 안 한다. 누워 있길 좋아하는 친구라 같이 지내자니 하루의 2/3는 나도 따라 누워서 빈둥거린다. 그래도 마음 하나만은 편하다. 직장에 다닐 때는 결근 신청을 하는 데도 괜히 미안하고 눈치가 보였다. 구부정한 허리를 가지고 억지로라도 출근했을 것이다. 누워 있어도 베란다 창을 통해 바깥 경치는 다 보인다. 봄 햇살이 따스해 보이는데 직접 쬐지는 못한다. 씩씩한 걸음으로 뒷산을 향하는 사람들을 본다. 아쉬운 점은 이번 주에 산청 삼매를 보러 가기로 했었는데 이미 그쪽 매화는 졌다는 소식이다. 내년으로 자동 연기되었다. 또, 한식에 선친 산소를 찾아가는 것도 미뤄지게 됐다. 청계산과 천마산의 봄꽃도 눈에 아른거린다. 그러나 새로운 구경거리..

길위의단상 2013.04.06

함석헌 읽기(8) - 씨알에게 보내는 편지 1

8권에는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잡지에 실렸던 함석헌 선생의 글이 모여 있다. 당시는 내가 대학생이었고, 군사독재의 철권통치가 극에 달했을 때였다. 캠퍼스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데모가 끊이지 않았다. 그때는 선생에 대한 관심도 그다지 없었고, 선생의 글을 찾아 읽었던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학생 운동권에서도 종교적 이미지가 강한 선생은 크게 주목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선생은 온갖 탄압 속에서도 를 꾸준히 발행하며 국민 각성 운동을 지속했다. 나름의 일관된 행보를 이어나간 것이다. 종교 집회는 열심히 찾아다녔으면서 선생의 글이나 강연회에는 관심이 없었던 게 지금은 부끄럽다. 선생의 글을 40년이나 지나 늦게 읽어보지만, 이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햇수는 중요하지 않다. 70년대 선생의 말씀은..

읽고본느낌 2013.04.05

논어[24]

어느 사람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정계에 나서지 않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옛 글에 '효도로다! 효도로 형제끼리 우애하며 집안일을 보살핀다' 하였으니, 이것도 다스리는 것인데, 왜 꼭 정계에 나서야만 되나?" 或 謂孔子曰 子奚不爲政 子曰 書云 孝乎 惟孝 友于兄弟 施於有政 是亦爲政 奚其爲爲政 - 爲政 14 공자에게 있어 사람살이의 기본은 가정에서 출발한다. 효제(孝弟)가 알파요 오메가다. 안에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와 우애하는 마음이라면, 밖에서도 어른을 공경하고 다른 사람을 믿고 사랑하게 된다. 그렇게 확장되어 나간 사회가 공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공동체였다. 결국 정치의 근본도 효와 제다. 공자에게 가(家)와 국(國)은 규모만 다를 뿐 질적인 차이가 없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

삶의나침반 2013.04.04

희망

랍비 아키바가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당나귀와 개와 작은 램프를 갖고 있었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기 시작하자 아키바는 헛간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아직 잠자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램프를 켜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와 램프가 꺼져 버려 그는 하는 수 없이 잠을 자야만 했다. 그날 밤 여우가 와서 그의 개를 죽여 버렸고, 사자가 와서 당나귀를 죽여 버렸다. 아침이 되자 그는 램프를 갖고 혼자서 터벅터벅 출발했다. 어떤 마을 근처에 다다랐는데,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전날 밤 도둑이 습격하여 마을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몰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램프가 바람에 꺼지지 않았더라면 그도 도둑에게 발견되었을 것이다. 또 개가 살아 있었더..

참살이의꿈 2013.04.03

타력

일본 불교 중 하나인 정토진종(淨土眞宗)을 처음 접한 건 10여 년 전 키요자와 만시가 쓴 라는 소책자를 통해서였다. 불교지만 타력신앙을 강조하는 점에서 기독교 신앙과 닮은 데가 많아서 놀랐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 같은 것이다. "사람은 무한자(無限者, The Infinite) 또는 절대자(絶對者, The Absolute)와 만남을 통해서만 든든한 토대 위에 설 수가 있다." "인간을 초월하는 힘[他力]을 의존함으로써 얻게 되는 내적 평안이 신심(信心)이다." "종교는 이 세상에서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따라가야 하는 그런 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너머로 가서 닿는 길이다." "나는 내 지력(知力)에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여래(如來)를 믿고 의지한다." 정토진종을 창시한 사람은 신란(親鸞..

읽고본느낌 2013.04.02

병에게 / 조지훈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音階)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生)의 외경(畏敬)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虛無)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즉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날의..

시읽는기쁨 2013.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