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수목원을 찾은 날은 고운 비가 내렸다. 천리포수목원은 그동안 회원제로 운영하다가 지난 봄부터 일반인에게도 공개되었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그동안 이곳까지 왔다가 들어가지 못해 아쉬워했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천리포수목원은 30여 년 전에 한국을 사랑했던 한 외국인에 의해 조성되기 시작했다. 18만 평의 면적에1만여 종의 수목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자랑거리는 400종에 이르는 목련과 370종에 이르는 호랑가시나무라고 한다. 몇 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바다 옆에 자리잡은 수목원은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고 예술이었다. 이 수목원을 가꾼 분의 정성이 한 눈에 느껴졌다. 수목원을 돌아보는 세 개의 코스가 있는데 가장 긴 코스를 걸으면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수목원에는 낯선 나무들이 많은데 아직은 나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나무숲 사이를 산책하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느끼기에는 손색이 없다.
나무 외에 많은 종류의 풀꽃들도 피어 있었다. 설립자가 외국인이어선지 우리 자생화보다는 외국꽃이 더 많았다. 그러나 걷다 보면 나뭇잎이나 꽃들 하나하나가 가진독특한 미에 푹 빠지게 된다. 어느 수목원이나 마찬가지겠으나 특히 천리포수목원은 사계절별로 한 번씩은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수목원의 제 모습을 알게 될 것이다. 나무 공부도 좀더 하면서 앞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달라지는 수목원의 변신을 살펴보고 싶다.
천리포수목원은 수목뿐만 아니라 산책로도 아름답다. 그저 거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얻게 되는 명상의 길이다. 그러자면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이른 아침이나 저녁 시간이 좋을 것 같다. 혹 산책길에 서해의 저녁 노을을 만날 수 있다면 더욱 낭만적이리라.
이 수목원을 만드신 민병갈(1921-2002) 원장님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나는 죽어서 개구리가 될 거야"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이분은 24세에 미군장교로 한국에 왔다가 한국의 인심과 산천에 반해서 그대로 이 나라에 정착하셨다. 연못 옆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故 민병갈 원장님은 개구리의 오랜 팬이었습니다. 큰 연못과 논두렁에 개구리들이 합창을 하는 때가 돌아오면 일과가 끝나도 숙소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병세가 깊어지셨을 때에도 개구리 울음소리가 커지는 밤이 되면 오래도록 연못가에 머물렀습니다. 죽어서도 개구리가 되고 싶었던 그의 마음은 수목원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나무들을 돌보고 싶은 바람에서 나왔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