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63]

샌. 2009. 3. 22. 08:14

민중들은 새끼를 맺어 의사소통을 했지만

그들의 음식을 달게 먹었고, 그들의 의복을 아름다워했고,

그들의 풍속을 즐거워했고, 그들의 거처를 편안해했다.

이웃 나라는 서로 바라보이고

개 짖는 소리와 닭 울음소리를 서로 듣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民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樂其俗 安其居

隣國相望

鷄狗之音相聞

民至老死 而不相往來

 

- 거협 4

 

장자가 생각하는 유토피아가 그려져 있다. 장자가 꿈꾸는 것은 문명이 나타나기 전의 원시시대에 가깝다. 실제 원시시대가 그러했는지는 차치하고 장자가 생각하는 그 시대의 특징은 인간의 무지무욕(無知無欲)이다. 지도자가 있는지 없는지 의식하지 않고, 조직이 없으니 구속 받는 일도 없다. 무욕하니 가난하지만 넉넉하고, 서로 다툴 일도 없다.

 

이런 장자의 사상은 인간 본성을 외면한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생각이라고 비판 받는다.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실현 불가능한 공허한 소리로 들린다. 그러나 다른 면으로 생각하면 참으로 순결하고 순수한 유토피아의 꿈이라 할 수 있다. 장자 같은 자유의 정신만이 그릴 수 있는 유토피아이다.

 

장자의 생각을 현대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촌락 중심의 소규모 자립 공동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세계적 자본주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서식량이나 에너지가 자급적으로 해결되는 농업 중심의 작은 공동체가 장자의 이상사회에 가까운 것 같다. 글에서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는 것은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공동체의 성격을 암시해 준다. 또한 문명의 이기는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적정기술 이상의 기계는 그런 공동체 유지에 걸림돌이 된다.

 

어떤 공동체가 되었든 장자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 즉 무위(無爲)와 무지무욕(無知無欲)이 아니라면 어떤 바람도 이루어질 수 없다. 욕망의 충돌과 경쟁, 폭군의 출현이나 전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인간 역사가 그러했다. 유난히 정신혁명을 강조하는 장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 몽상가의 허황된 꿈으로 비쳐지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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