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 정희성

샌. 2008. 12. 26. 09:35

어느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 정희성

 

'그립다'는 말만큼 정겨우면서 가슴을 울리게 하는 말도 드물다. 그리움은 우리 마음 속의 깊고 심원한 그 무엇에 닿아 있는 정서다. 그리움은 우리가 떠나온 영혼의 고향에 연원을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리움은 거기에 이를 수도 없고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동경이므로 슬픔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것은 현상적 슬픔이 아닌 깊고 아득한 본원적 슬픔이다.

 

내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대를 통하여 본원의 그곳에 닿고 싶다는 갈망이 아닐까. 그러므로 모든 그리움은 아름답고 곱고 슬프다. 우리들 가슴 속에 그런 꿈과 그리움이 없다면 이 추운 계절을 견디가 힘들 것이다. 내 마음에 지펴진 고운 그리움이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귀하다. 그리움은 내가 이 세상을 따스하게 살아낼 수 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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