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 천양희

샌. 2008. 9. 9. 12:33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어떤 날은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막무가내 올라간다

고비를 지나 비탈을 지나

상상봉에 다다르면

생각마다 다른 봉우리들 뭉클 솟아오른다

굽은 능선 위로

생각의 실마리들 날아다닌다

뭐였더라, 뭐였더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의 바람소리

生覺한다는 건

生을 깨닫는다는 것

생각하면 할수록 生은 오리무중이니

생각이 깊을수록 生은 첩첩산중이니

생각대로 쉬운 일은 세싱에 없어

생각을 버려야 살 것 같은 날은

마음이 종일 벼랑으로 몰린다

생각을 버리면 안된다는 생각

생각만 하고 살 수 없다는 생각

생각 때문에 밤새우고 생각 때문에 날이 밝는다

생각이 생각을 놓아주지 않는다

지독한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 천양희

 

뒷 짐 지고 창 밖을 내다보고 있자니, 옆의 동료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느냐며 다가와 묻는다. 동료들에게 난 생각이 많은 사람으로 생각되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생각 많은 사람의 마음은 바람 잘 날이 없다. 인생살이의 생각이란 게 대부분 번뇌가 아니겠는가.그저 아무 생각없이 살고 싶은 때가 많다. 그러나 생각은 버리고 싶다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생각을 버리겠다는 생각이 날 괴롭힌다.

 

시인이 말하길, 생각은 生을 깨닫는다는 뜻이라는데,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生은 오리무중이고 첩첩산중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헤매기만 한다. 그러나 또 달리 생각하면 그런 생각들이 바로 '나'가 아니겠는가. 생각을 떠나서 '나'를 찾을 수 없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그런 생각들이 모여 나를 만든다. 이런저런 오만가지 생각에 시달리는 나에게 오늘은 이 시의 한 구절이 마음을 때린다. '지독한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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