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2008년 6월 10일 오후의 서울

샌. 2008. 6. 10. 18:57



2008년 6월 10일, 서울에 명물이 등장했다. 대형 컨테이너 6개가 세종로 넓은 길을 막아 버린 것이다. 오늘 청와대 주변은 그야말로 전쟁 전야처럼 어수선하고 긴장감에 싸여 있다.

 

국민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새벽부터 작업을 해서 저런 성채를 쌓아야 했을까? 오후 들어서는 청와대로 들어가는 모든 길목에 컨테이너 장벽이 만들어졌다. 정말 꼴불견 정권다운 완벽한 대비 태세다. 진즉에 국민들과 대화를 하고 요구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귀 기울였어야지, 이젠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생겼다.

 

오늘 저녁 촛불 문화제에는 꼭 참석하려고 했으나 사정이 생겨 직장에서 일찍 나와야 했다.청와대에서부터 서울역까지 걸어갔는데집회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고 있었다.거기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6.10 항쟁 21주년이 되는 날, 서울의 중심 거리에는 국민들의 뜨거운 열기와 에너지가 끓어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항구에 있어야 할 컨테이너가 도심 거리에 등장했다. 생뚱맞게 등장한 풍경에 시민들은 어리둥절하다가 결국은 실소를 한다. 컨테이너에 걸린 대형 태극기와 뒤의 이순신장군 동상이 더욱 처량하게 느껴진다. 차라리 누군가가 시민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설치미술을 전시한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경복궁을 따라 청와대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컨테이너 방어벽이 세워졌다. 이곳은 2차 방어선인 셈이다. 사진을 찍다가 경찰로부터 제지를 받았는데, 작전중이니 마음대로 촬영하지 말라고 한다. '작전'이라는 말이 왠지 섬찟하게 들렸다.

 

시내 여기저기에서는 낮부터 소규모 집회나 전시회, 그리고 이런 토론회도 열리고 있었다. 촛불 하나는 작고 연약하지만 수 천 수 만개가 모이면 큰 불길이 된다. 그리고 촛불은 명상적이고 감성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촛불 문화제의 기본 성격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시청 앞 광장에서는 보수단체에서 촛불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대낮부터 미리 장소를 선점하고 맞불을 놓은 것이다. 각자의 신념이야 자유지만 그들이 말하는 '법질서 수호'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나는 생명의 외침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한 달여 이상 계속되어 온 촛불 항의는 맨처음에 여고생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린 그들이 본능적으로 생명에 대한 위협을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것이 점차 국민들의 공감을 얻고 이 정부의 어설픈 대응이 보태져 지금과 같은 정권에 대한 대규모 항의로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정부의 실체가 일부나마 벗겨진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잘 살게 해 준다는 공약을 믿고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러나 이 정부가 말하는 잘 산다는 것이 기득권층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 사람보다 돈이 더 귀할 수 없다는 것을 국민들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더 나아가 세계화나 신자유주의, 그리고 한미 FTA에 대해서도 회의의 눈으로 바라보게도 되었다. 앞으로 이명박정부가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고 전처럼 오만하게 정책을 집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정부 정책 방향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만으로도 촛불문화제는 국민의식을 한 단계 성숙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손에 손에 든 촛불은 이 시대에 인간의 행복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를 묻는 생명 자체의 질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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