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다시 떠나는 그대 / 김광규

샌. 2008. 6. 3. 08:26

그래도 그대는 떠난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처럼 집안 단속을 하고

문을 잠갔나 확인하고

손때 묻은 세간살이 가득 찬 정든

집을 등 뒤로남겨놓은 채

손가방만 하나 들고 결연히 떠나서

새 집을 찾는다 언젠가

그 집을 가득 채우고 다시

비어놓은 채 뒤돌아보며 집을

떠날 그대여

몇 번이고 망설이며 떠났다가

소리없이 돌아와 혼자서

다시 떠나는 그대여

 

- 다시 떠나는 그대 / 김광규

 

다시 떠난다. 인생이란 늘 새 짐을 꾸리고 길을 떠나는 것. 우리는 길 위에 선 나그네들이다. 돌아오기 위해서 새로운 길 위에 선다. 다시 떠나기 위해서 집을 가득 채운다. 그러나 어찌 망설임이 없으랴. 안온한 항구의 품에 대한 미련이 없으랴.

 

안개에 덮인 저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과연 그 무엇이 있는 것이나 하는 걸까? 수없이 속았지만 신발끈을 매며 다시 착각에 빠진다. 나를 기다리는 그 무엇이 있을 것만 같은, 그 환청에 이끌려 길을 나선다. 그러나 낯선 길 위에 서면 다시 깨닫는다. 그 무엇을 바라고 길을 나선 게 아니었음을...

 

그대는 집을 떠난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