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못자리에 들어가는 못물처럼 / 장석남

샌. 2008. 5. 23. 14:19

누구나 혼자 있을 때는

돈 걱정 여자 걱정 같은 거나 좀 면하면

못자리에 들어가는 못물 같은 것이나 생각해 보면 좋다

그 못물이 못자리 한 바퀴 빙 돌아

새로 한 논둑에 생긴 손자국 발자국 앞에 슬몃 머무는 것

생각해 보면 좋다

 

그것도 아니면

못자리에 들어가는 그 못물의 소리를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 가운데다

앉혀보는 것은 어떤가

그 소리로써 잠자리의 곁을 삼아보는 것은 어떤가

 

못자리에 들어가는 못물처럼

하루나 이틀 살아보는 것은 어떤가

아니, 여러 날씩

살아보는 것은 어떤가

 

- 못자리에 들어가는 못물처럼 / 장석남

 

고향집의 어머니는 며칠 전에 모내기를 하셨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깔은 모판에 있는 여린 벗잎의 색이고,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라고 했다. 물이 찰랑거리는 논에 연초록 물감을 찍어놓은 듯한 지금의 농촌 풍경은 무척 아름답겠다. 그 풍경 속에 안기면 험한 세상사도 잠시 잊어볼 수 있겠다.

 

못자리에 들어가는 못물의 소리는 생명의 소리고 희망의 소리다. 그 소리는 나를 살리는 힘이고, 우리 모두를 살리는 힘이다.내 한 마음 주체하지 못하니 못자리로 들어가는 못물의 싱싱한 소리가 더욱 그립다. 메마른 내 속으로도 그런 생명의 물줄기 하나 뚫고 들어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