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 장석남

샌. 2008. 5. 27. 11:14

죽은 꽃나무를 뽑아낸 일뿐인데

그리고 꽃나무가 있던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목이 말라 사이다를 한 컵 마시고는

다시 그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잘못 꾼 꿈이 있었나?

 

인젠 꽃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 잔상(殘像)들

지나가는 바람이 잠시

손금을 펴보던 모습이었을 뿐인데

 

인제는 다시 안 올 길이었긴 하여도

그런 길이었긴 하여도

 

이런 날은 아픔이 낫는 것도 섭섭하겠네

 

-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 장석남

 

마음의 통증에는 주소가 없다. 어떨 때는 아무 이유도 없이 찾아온다. 원인을 모르는 신체의 병처럼, 이유도 없이 찾아오는 정체 모를 통증은 두렵고 아프다.

 

지나간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모든 통증의 배후에는 그리움이 숨어 있다. 이루지 못한, 그냥 흘러보낸, 또는 아쉬움 같은 것, 그런 것들이 통증의 뒤에 도사리고 있다. 그리움의 작은 파문들이 응축되었다가 어느 땐가 통증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러므로 '아픔이 낫는 것도 섭섭하겠다'고 말하는 시인의 고백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아픔이 낫는 것도 섭섭해지는 그런 날들이 우리에게는 있다. 그리움이 없다면, 그런 아픔이 없다면, 이 한 세상 건너가기가 더욱 팍팍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