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수원 화성을 일주하다

샌. 2008. 5. 17. 20:51

세 번째 <토요 걷기>는 수원 화성을 일주했다.

 

안내문에는 화성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나와 있다.

 

'수원 화성(華城)은 조선 22대 정조대왕이 1794년(정조 18년)1월에 착공하여 2년 9개월 후인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다. 정조대왕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침(園寢)을 양주 배봉산에서 지금의 화성시화산(花山)으로 옮기고 부근에 용주사를 세워 부왕의 명복을 빌었다. 당시 화산 아래에 있던 관가와 민가를 팔달산 아래로 모두 이전시키고 수원부를 유수부로 승격시킨 것이 현재의 수원이다. 화성의 축성은 역대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성의 시설물은 41개소이며 미복원 시설물은 7개소이다. 210여년 전에 축조된 화성은 가장 근대적인 규모와 기능을 갖추고 있다.'

 

화성은 성곽 축조에 석재와 벽돌을 병용한 것, 화살과 창검을 방어하는 구조와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 구조를 갖추고 있는 점, 그리고 용재를 규격화하여 거중기 등의 기계장치를 활용한 점 등에서 우리나라 성곽 건축사상 가장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화성은 정조의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당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정조를 정점으로 관료, 학자, 기술자, 백성이 함께 만든 근대적 신도시이며 실학의 결정체라고 한다. 또한 화성은 자랑스럽게도 1997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동이포루에서 바라본 화성 성곽. '포루'란 치성(稚城) 위에 설치한 루(樓)로 군사들을 숨겨두고 적군이 보지 못하게 하는 시설물이다. 성곽을 따라 이런 포루와 치가 연이어 만들어져 있다.

 



성곽 길에서 산딸나무꽃을 만났다. 이 흰색의 십자형의 꽃 이름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작년에 고대산에 갔을 때 열심히 배운 것이었는데 1년 사이에 이름이 가물해진 것이다. 서양에서는 이 꽃이 종교적 상징물로 사랑받는다는 얘기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동장대에서 바라본 창룡문(蒼龍門). 창룡문은 1795년에 건립된 화성의 동문이다. 6.25 때 소실된 것을 1978년에 복원했다고 한다. 이 부근이 화성에서 가장 공터가 넓고 조망이 시원했다.

 



동장대(東將臺) 또는 연무대(鍊武臺)라고 하는 건물이다. 이곳은 지형이 높지 않아서 성 밖을 감시하기보다 주변 빈 터에서 군사를 훈련하고 지휘했던 곳이다. 정조는 왕권 강화를 위해 자신의 친위부대에 해당하는 장용영(壯勇營)을 만들었다. 아마장용영 소속의 병력이 여기에 주둔해 있었고 여기서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정조도 이 동장대에 올라 군사 훈련을 지켜보지 않았을까.

 



화성에는 특이한 건축물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이라고도 불리는 동북각루(東北角樓)이다. '각루'란 높은 위치에 건물을 세워 주변을 감시하기도 하고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곳이라고 한다. 이 동북각루는 성에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지만 도리어 그런 점이 여유가 있어서 좋다. 이곳이 전체 성 중에서도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이라고 한다.

 



동북각루 벽에 새겨진 십자 모양의 문양이 아름다웠다. 성은군사시설이며그런 점에서 남성적이고 거칠다. 그런 성의 건축물에서 이런 여성적인 디자인을 만난다는 것은 너무나 반가운 일이었다. 동시에 옛 사람들의 여유있는 마음씨가 느껴져서 좋았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맞으며 동북각루 난간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밑의 연못에 있는 버드나무 또한 푸르고 한가로웠다. 전에는 이런 풍경에 별로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작고 소박한 것에 진정으로 마음이 끌린다. 둥근 석축 위에서 있는 왜가리 한 마리가 게을러 보이는 몸짓으로 오락가락했다. 아주 느린 슬로모션이었다.

 



동북각루에서 바라본 동북포루(東北砲樓). 화성에는 벽돌로 만든 다섯 개의 포루가 있다. 포루는 원거리의 적을 공격하기 위해 포를 설치한 곳이다. 이런 서양식 포루가 있는 것이 화성의 특징이라고 한다.

 



화성의 북문이면서 정문 역할을 한 장안문(長安門). 장안문은 한양에서 화성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다.이름에 걸맞게 그 위용이 당당하다. 우리나라 성문 중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이 장안문 매표소에서 관람권을 구입해야 했다. 그런데 표를 확인하는 방법이 엉성하기 그지 없었다.

 



서장대로 가는 길에 본 화서문의 옹성과 서북각루의 모습으로 팔달산으로 올라가는 시작점이다. 성곽과 어우러진 주변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성을 쌓을 때 던 이런 조형미까지 고려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떻든 성도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음을 화성이 보여주고 있다.

 



팔달산 정상에 서 있는 서장대(西將臺). 화성장대(華城將臺)라고도 한다. 이 현판 글씨는 정조가 쓴 것이다. 이곳에서 정조는 갑옷을 입고 친히 군사들의 훈련을 지휘했다. 이 서장대도 몇 년 전에 술 취한 사람의 방화로 소실된 것을 복원했다고 한다.

 



서장대에서 수원 시내로 내려가는 소나무숲길. 저 아래로 걸어내려가 숲으로 들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났다. 이런 걸 보면 이곳에 살고 있는 수원 시민들이 부러워진다.

 



성곽의 돌은사이에 틈이 없을 정도로 아귀가 기가 막히게 잘 맞아 있다. 저 단단하고 무거운 돌을 두부 자르듯이 요리한 옛 사람의 정성과 수고가 느껴져 숙연해졌다. 화성 성곽을 축조할 때는 노동 시간을 30 분 단위까지 정확히 계산하여 임금을 지급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팔달문에서 출발하여 성곽을 한 바퀴 돌고 다시 팔달문으로 내려왔다. 팔달문(八達門)은 화성의 사대문 중 하나로 서울의 남대문에 해당된다. 장안문과는 성내를 관통하는 일직선상의 주도로로 연결되고 있다. 이 팔달문을 보니 얼마 전에 소실된 남대문이 떠올라 마음이 씁쓰름해졌다.

 



정조는 효심이 극진하여 13 차례나 현륭원을 참배했다 한다. 그때 유숙할 장소로 건설된 것이 이 화성행궁이다. 그리고 본인이 왕에서 물러난 후 이곳에서 노년을 보낼 계획이었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일제 시대 때 행궁은 파괴되었고 지금 보는 것은 1996년에 복원한 것이다. 새 건물에서는 전혀 옛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 팔달산 자락에서 바라보는 행궁의 전체 모습에 만족해야 했다.

 



수원천은 화홍문 아래로 해서 성을 관통해 흐른다. 멀리서 보기와 달리 하천물은 맑고 깨끗했다. 특히 천변에 수초가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어 더욱 좋았다. 비록 겉으로는 깔끔해 보이지 않아도 이런 자연스런 모습이 원래의 하천에 가까울 것이다. 온통 시멘트로 뒤덮인 청계천과 대비가 되었다.

 



수원천을 걷다가 가장 눈길을 끈 것이 붉은인동이었다. 천변의 옹벽을 덮은 붉은인동의 색깔이화려하고 고혹적이었다. 보통의 흰색과 노란색의 인동과 달리 붉은인동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수원 화성 걷기는 전날 전격적으로 결정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수원역에서 내린 뒤다시 버스를 타고 팔달문까지 간 후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성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수원행궁을 거쳐 수원천을 걷는 데까지 여섯 시간이 걸렸다. 성의 길이가 6 km이니 약 8 km를 걸은 셈이다. 이번에는 순수한 걷기보다 도중에 볼거리가 많아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화성은 7 년 전에 동료들과 와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장안문을 중심으로 잠시 들렀다가 갔었다. 그런데 이번에 성을 완전히 일주하고나니 제대로 답사를 한 것 같다.

 

성을 돌면서 200여 년 전의 성 안의 옛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옛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의 도시들은 수백 년 전의 건물이 가로를 따라 그대로 남아 있어 고풍스런 맛이 그대로 전해진다. 억지로 재현시킨 것보다 훨씬 더 의미가 있다. 우리는크고 새 것에 대한 밝힘증이 너무 강하다. 화성 안을 현대적으로 개발하기보다는 조금씩이라도 옛 모습을 복원하는 방향으로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원을 사랑했던 정조가 여기에 제 2의 수도를 꿈꿨듯이, 지금의 우리는 화성 안쪽을 옛 것과 새 것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터로 만들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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