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때는 서쪽으로 난 창문 커튼에 붉은 물이 들기 시작하는 저녁 6시 근방이다.
지는 해의 잔광을 의지해 읽던 책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될 무렵, 물끄러미 창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곱게 익어가는 감의 색깔처럼 젖빛 유리창에, 커튼에 바알간 물이 들기 시작한다.
그 색깔은 부드럽고 은은하다. 한낮에는 바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밝은 빛을 뽐내던 태양도 지금 이 시간 쯤 되면 한 마리 양처럼 얌전해진다. 우유빛 유리창을 통과한 빛은 한 번 더 유순해져서 마치 꼭 깨물어주고 싶은 아기의 뺨을 닮는다.
나는 시시각각 변해가는 색깔의 그림자에 넋을 앗긴다. 그리고 마음은 잔잔한 기쁨과 천상에서 내려오는 듯한 평화에 잠긴다.겉으로 보이는 남루한 현실의 모습과는 달리, 세상의 속살은 참 따스하다는 것을 나는 직감으로 알아챌 수 있다. 그리고 내 마음은 그런 아름다움을 새삼 발견한 희열로 빛난다.
그러나 그 시간은고작수 분밖에 안 될 정도로 짧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이 그러하듯이, 그 시간과 그 빛역시 어디론가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나간다. 생각해 보면 영원하고 지고한 아름다움은 우리 손에 잡히지 않는 곳에 있다. 그것이 우리가 별을 끝없이 동경하는 이유일 것이다.
해가 지고 나면 노을의 여운을 즐길 틈도 없이 어둠이 쫓기는 도둑처럼 급하게 덮친다. 노을과 어둠의 사이 역시 우리가 알아채지 못해서 그렇지 그만의 독특한 색깔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 없다. 우리가 어둠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 오랜 시간 변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익숙해지기 전에 사라져야 하는가 보다. 아름답기 때문에 일찍 사라지는 것인지, 일찍 사라지므로 아름다운 것인지는 모르지만.... 세상의 아름다움은 아쉬움 없이 천상의 세계로 날아가 자리를 잡고, 그리고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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