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비가 오면 우울해져요

샌. 2007. 5. 16. 15:31



나이가 들면 날씨 변화에 둔해지게 될까? 민감해지게 될까? 아니면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나는 걸까? 오늘 같이 차르륵거리며 비가 내리는 날은 나는 무척 우울해진다. 동시에 무기력증에 빠지면서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이것은 최근에 찾아온 회색 손님의 영향이 크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날씨에는 괜스레 안절부절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축 가라앉더니 오전에 천둥이 여러 차례 지나갔다. 그리고 오후부터 봄비가 내린다. 갈 곳을 잃은 내 마음은 이리저리 헤매이고 있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있건만 전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전에는 빗속을 달리는 드라이브가 좋았다. 그때는 그래도 뭔가 생기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지금은 아무 의욕도 없이 그저 멍하니 비 내리는 창 밖 풍경을 구경만 한다. 머릿속으로는 비 내리는 바닷가를 혼자 걷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아니면 마음에 맞는 사람과 소주를 나누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몸을 움직여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도 이런 독백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한창 가라앉아 있을 때 내 친구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도 못했다. 식음까지 전폐하는 철저한 잠수였다. 긴 열병을 앓고 나서야 생기를 찾으며 다시 세상에 나왔다. 나는 친구에 비하면 로맨틱한 수준의 가벼운 우울증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상당히 심각한 내홍을 앓고 있는 셈이다. 다른 사람들은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내 심정의 일단을 밝히면 사람들은 대개 놀라기도 하고 놀리기도 한다. 이런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구나 하는 판단은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라고, 그리고 오락거리의 재미있는 일을 찾아보라고 충고를 한다. 맞는 말이지만 아직 그래 보지는 못했다. 그것은 내가 나를 더 잘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외부 세계로 눈을 돌리는 것이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마 외적인 접촉으로 나를 잊으려 한다면 나는 더 혼란에 빠지고 좌절하게 될 것이다.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 이 상태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런 상황을 즐기려는 묘한 심리도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나 자신도 이해하기 힘든 기질이다.

 

비 내리는 풍경은 무척 곱다. 사진을 찍어보면 그 예쁜 색감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이때 나는 비 내리는 풍경이 내 심상(心象)과 닮았지나 않은지 하고 건방진 추측까지 해본다.마음 속 풍경이 저렇게 펼쳐지고 있으니 이렇게내 속마음이 요동을 치는구나 하고 말이다. 이 정도면 나는 우울증이 아니라 왕자병을 걱정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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