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허전한 스승의 날

샌. 2007. 5. 15. 13:33

스승의 날이 마치 퇴화하고 남은 꼬리뼈 마냥 어정쩡하고 거추장스럽다. 희화화 되고 껍데기만 남은 이런 스승의 날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이 날은 도리어 교사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날이다. 스승의 날이 처음 생긴 것은 1964년인데, 올해로 43회 째가 된다. 전에는 한국의 스승 존경 풍토를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했지만 이제는 반대 입장이 되었을 정도로 우리는 앞으로 전진했다.

처음 교직에 나왔을 때인 7, 80년대의 스승의 날에는 전체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그래도 약간은 경건하게 의식을 치렀다. 앞에 도열하신 선생님들께 카네이션도 달아들이고, 학생 대표가 감사의 인사말도 하고, 스승의 노래도 불렀다. 스승의 노래를 들으며 앞에 서있기가 간지럽고 쑥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교실에서 학급별로 담임을 모시고 놀기도 했고, 오전에는 운동장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운동 시합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뒤뚱거리며 뛰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한껏 웃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고전적인 행사는 이제 사라지고 있다. 여기서는 운동장 전체 행사도 생략하고 있다. 학생들을 운동장에 집합시켜 봐야 중구난방 떠들어대서 행사 자체가 민망해지고 만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니 뭔가 다르겠지 하는 기대는 여지없이 실망으로 변한다. 이런 것은 도시 학교들의 공통된 모습일 것이다. 많은 학교들은 아예 휴교를 해버린다. 사실은 그게 제일 마음 편한 선택이다.



오늘 일보에 소개된 스승의 날 일정이다. 1교시는 교실에서 방송조회를 하는데 스승의 날 행사가 아니고 학생들에게 시상을 하는 통상적인 행사다. 그리고정규수업을 하는데 그나마 오전까지만 수업이 잡혀있어 스승의 날이랍시고 오후에는 쉬라고 하는 것이 다행이다. 오전 수업도 분위기상 제대로 된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후에는 옛 스승 찾아뵙기 지도 및 귀가로 되어 있는데 과연 이 아이들 중 몇 명이전의 선생님을 찾아가볼 마음을 먹을 것인가. 교사도 학부모도 부담을 느끼는 이런 현실에서의 스승의 날은 없애는 게 마땅하다고 본다.

세상도 많이 변하고, 우리가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여기던 가치들도 길바닥에 던져지고 있다. 삭막한 세상이 학교까지 경쟁과 이기심으로 얼룩지는 서글픈 현장으로 만들고 있다. 이미 그런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애써 지켜나가야 할 가치는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 같지도 않는 것들에게 존엄한 가치가 짓밟히는 꼴을 보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물론 그 책임에서 교사라고 예외가 되지 않는다. 도리어 학교를 이 지경으로 만든 일차적인 중한 책임이 교사들에게 있다.

이미 떠나간 버린 것에 대해서 미련을 두고 아쉬워하는 것만큼 쓸쓸한 노릇도 없다. 보람도 사랑도, 사람 사이의 따스한 정도 점점 사라지고 있는 학교에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불청객 스승의 날이 교사들을 더욱 허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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