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크세르크세스의 눈물

샌. 2007. 1. 5. 16:04

오후에 한강변을 산책하다.

 

바람도 없는 겨울 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다.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올해는 아직 스케이트장 개장을 못했다고 걱정한다. 추운 지방 사람들이 겨울을 지내기에는 좋지만 전 지구적 규모로 보면 온난화가 아무래도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에는 북극의 빙산이 계속 줄어들고 있는 사진이 공개되었다. 이런 급속한 기후 변화는 생물계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개인이 할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대개는 내 일이 아니라고, 또 어떻게 되겠지 하며 낙관적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강변에 앉으니 맞은 편의 아차산이 눈에 들어온다.

 

저 산 능선을 따라 옛 고구려 보루의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옆의 용마산을 포함하여지금까지 10개 가까운 보루가 발굴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 전 고구려군의 전진 기지가 저기 있었던 것이다.

 

서기 475년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를 공격하여 바로 이곳 아차산 부근에서 대전투가 벌어져 백제의 개로왕은 전사한다. 백제는 세력이 축소되어 웅진으로 천도하는데 그 뒤부터 이곳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전략 요충지로서 중요한 곳으로 된다. 지금 남아있는 아차산성도 백제를 물리친 뒤 고구려에서 쌓은 성으로 알고 있다. 그 뒤 신라에서 한강 유역을 평정하면서 이곳도 조용해졌을 것이다.

 

산과 강은 그대로인데 인간과 인간이 만든 국가는 흥망성쇠를 거듭해 왔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리고 그 나라 또한 어디로 갔는가?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다더니 살았던 흔적 하나 남기지 못하고 완전히 잊혀져 버린 인간의 삶이 허무하기 짝이 없다.

 

기원전 400년대에 페르시아와 그리스는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다. 당시 세계 최대의 제국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일방적으로 침략하는 전쟁이었다. 세 번째인가의 원정일 때 페르시아 황제는 크세르크세스였다. 크세르크세스는 대군을 이끌고 소아시아를 가로질러 유럽에 들어갔다. 크세르크세스는 언덕 위 대리석 옥좌에 앉아 해협을 건너는 페르시아 군대를 사열하고 있었다. 그때의 광경을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리고 헬레스폰트 해협이 한없이 펼쳐진 군선으로 메워지고 양쪽 기슭과 아비도스 평원이 병사들로 가득찬 진영을 보면서 크세르크세스는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선언하고는 울기 시작했다.... "왕이시여! 방금 폐하는 천하의 행운아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인 눈물이시오니까?" 그러자 황제가 말하기를. "그렇소, 내가 이 군대를 다 열병하고나니 문득 영고성쇠가 무상하고 인간 세상이 가련하다는 것이 아프게 느껴졌소. 100년이 지나면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살아남을 자가 몇이나 되겠소"하고 말했다.'

 

정복 전쟁에 나선 황제의 눈물이 어울리지 않기도 하지만 어쩌면 인간으로서의 솔직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걸 알았더라면 왜 무수한 병사들의 죽음을 볼모로 제국 팽창을 위해 무모한 전쟁을 일으켰을까? 결국 페르시아군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패하고 페르시아로 물러난다. 그리고 이 전쟁을 계기로 페르시아 제국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성공과 부흥, 전성기, 그리고 자만과 쇠망의 길은 역사상 모든 나라들에서 나타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한 인간의 생애도 마찬가지다. 크고 작은 부침을 겪으며 짧은 생을 살다 간다.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집착과 욕망의 포로가 되어 마치 천년만년 살 수 있을 듯이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그러나결국은 누구나 한 줌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강변에 앉아서 크세르크세스의 눈물을 생각한다. 천하를 다 가진 자, 황제의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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