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 전철역에서 내려 선유도 방면으로 한강에 나가려 했으나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엉뚱하게 안양천에 닿게 되었다. 예전에 자주 쓰던 말로 '삼천포로 빠졌다"는게 이런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서 계획에 없던 길을 걷게 되었다.
인생길에도 그런 경우가 허다하다.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 인생 행로가 바뀌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 사소한 일이야 이래도 저래도 좋다지만 '어느날 갑자기' 식의 사건이 터져 180도로 인생길이 달라지기도 한다.한 사람의 삶이 송두리째 변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미미해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때가 중대한 전환점이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그러나 수많은 인생길 중에서 어느 길이 좋고 나쁜지를 판별할 기준을 우리는 갖고 있지 못하다. 아니, 좋고 나쁨의 구별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모든 길은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목적없이 걷는다는 것은 머리에 휴식을 준다.몸은 계속 움직이지만 반대로 사념은 저절로 잦아든다. 이런 저런생각이 떠올라도 자연스레 내버려두지만 그 생각이 깊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생각이 끊기는 때가 잠시 찾아오기도 한다. 명상의 경지에 드는 순간이다.
두 시간 정도 계속 걷다보면 몸이 나근하게 풀어지면서 딱딱했던 머리도 나긋나긋해진다. 누구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도 봄눈 녹듯 사라져 간다. 용서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이 마음이 넓고 여유로워지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내가 걷기를 좋아하는 이유다. 그러나 어떤 날은 영 마음이 풀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도 최소한 기다리기로 하는 마음은 생겨난다. 조금은 기다려보기로, 내 판단만이 옳지는 않을 거라는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1년만에, 그것도 우연히 안양천을 다시 걸었다. 겨울이어선지 천변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었었는데 상류쪽으로 걷는 방향으로는 다행히 뒷바람이 불어서 걷기에 수월했다.
13시에 시작한 걸음이 해가 질 때 즈음이 되어 안양시 석수동에 닿았다. 길은 계속 이어져 있지만 여기서부터는 잘 알지 못하는 산자락 길이어서 발걸음을 돌렸다. 다섯 시간에 걸쳐 약 20km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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