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사람 노릇 하기

샌. 2006. 6. 5. 10:31

우리는세상에 태어나서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관계의 폭은 점점 넓어진다. 부모, 부부, 자식, 형제자매, 친구, 이웃,동료, 친척, 동창, 고객 등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노릇을 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정에서 일차적 관계인 부모 노릇, 자식 노릇 제대로 하기 조차 힘에 겨울 때가 많다. 신경을쓴다고 하지만늘 부족하고 미안하기만 한 것이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이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노심초사하지만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떨 때는 가족 행사가 의무방어전처럼 부담이 되기도 한다.

 

어머님과 장모님의 생신이 묘하게도 같은 날이다. 그래서 우리들 때문에 두 분의 생신은 매년 조정을 해야 한다. 대부분 한 주일 간격으로 떨어져 치렀지만 올해는 지난 주말에 어머님은 토요일, 장모님은 일요일로 하기로 날짜를 잡았다. 장소가 어머님은 천안의 동생네 집, 장모님은 수원의 처남 집이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에 직장을 조퇴하고 영주에 내려가서 어머님을 모시고 천안까지 갔다. 아침 10 시부터 운전해서 저녁 6 시에 천안에 도착했다. 동생네가 천안에 살기 시작한 것은 어느덧 8 년째가 되어 간다. 무심하게도 나로서는 이번이 첫걸음이었다. 그동안 형제들 간에 말 못할 갈등이 있었다. 그 전말을 생각하면 창피하고 가슴 아픈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 그 사실 만으로도 어머님에게 큰 불효를 저지른 셈이다. 밤에는 동생들과 소주를 많이 마셨다.

 

다음 날 아침 수원으로 출발 해 점심은 장모님을 모시고 일식집에서 처가집 식구들과 함께 했다. 그나마 처갓집은 형제들 간에 우애가 좋은 편이다. 작은 갈등들이 크게 커지며 폭발하지 않고 그때 그때 지혜롭게 해결되어 간다. 그 중심에는 중간에서 처신을 잘 하는 처남이 있다. 늘 고맙게 생각한다.

 

하늘로부터 받은 사람의 성격이 개인뿐 아니라 가정의 행복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인 것 같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일수록 양보나 이해심이 부족하고 갈등이나 마찰을 자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제 자리로 돌아오는 탄력성도 부족하다. 나로서도 그런 경향이 심한 편인데 이런 자기중심성은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기는 커녕 더욱 기승을 부린다. 어떤 때는 어린 아이들만도 못해 보여서 슬프다.

 

살펴보면 가장 큰 상처를 받는 것이가까운 가족인 경우가 흔하다. 상처와 위로를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관계가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면서 성숙해 간다지만 나이 들어서까지 태격태격하는 모습은 슬픈 풍경이다. 그러나 내 경우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경우 연륜과 마음의 넉넉함과는 비례하지 않는다.

 



그날 천안으로 가는 길에 어머님 고향 마을 앞에 있는 석송령을 보러 잠시 차에서 내렸다. 어머님의 고향은 예천군 덕률마을이다. 열여설 살 때 가마 타고 영주로 시집을 오셨다. 새벽에 출발하여 밤이 되어서 시집에 도착했다고 한다. 60 년 전 가마 타고 시집 오던 그 길을 따라 모시고 가며 그때 얘기를 들었다. 열여섯 새색시가 여든이 가까운 할머니가 된 긴 세월의 무게를 어머님은 어떻게 느끼실지 내 마음이 왠지 무거워졌다. 그것은 가까이 모시지도 못하면서 마음 조차 편안케 해 드리지 못하는 못난 자식의 자격지심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사람, 좋은 사람 노릇, 그게 뭔지 뚜렷이 잡히지도 않고 또 그렇게 되기가 참말로 어렵다. 내 가정에서 좋은 남편, 좋은 아빠 노릇을 했는지 자문할 때 대답은 망설임 없이 "아니다" 이다. 더 나아가 자식으로서, 형으로서 마땅히 할 일을 했는지도 마찬가지다. 이러니 다른 노릇은 더 말 할 필요도 없다. 자신의 행실과 벗어난 고담준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도대체 언제쯤 되어야 제대로 사람 노릇을 하며 살 수 있을지, 전에는 애써 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기대도 접었다. 그저 부족하기만 한 나를 안타깝고 불쌍히 여기며 인생길의 동행자가 되어 같이 걸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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