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오월의 유혹 / 김종호

샌. 2006. 5. 1. 13:00

곡마단 트럼펫 소리에

탑은 더 높아만 가고

유유히

젖빛 구름이 흐르는

산봉우리

분수인 양 쳐오르는 가슴을

네게 맡기고, 사양(斜陽)에 서면

풍겨오는 것

아기자기한 라일락 향기

계절이 부푸는 이 교차점에서

청춘은 함초롬히 젖어나고

넌 이브인가

푸른 유혹이 길들여

감미롭게 핀

황홀한

오월

 

- 오월의 유혹 / 김종호

 

60 년대 말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이 시가 실려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고등학교 2 학년 교과서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국어 시간을 제일 좋아했다. 교과서에는 지금 보아도 명문에 해당되는 좋은 글들이 여럿 실려 있었는데 그 글을 낭랑한 목소리로 해설해 주시는 국어 선생님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키가 자그만하시고 나이가 드셨지만 동안이셨다. 목소리가 무척 맑고 고왔던 기억이 난다. 국어 시간이면 넋을 잃고 선생님의 설명에 빠져 들었다.

 

교과서에는 미국 그랜드캐년에 다녀온 어떤 분의 기행문도 실려 있었는데,글을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의 해설이 어찌나 실감나던지 마치 내가 그랜드캐년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 해외여행을 하게 되면 그1 순위로 그랜드캐년을 다짐했었는데 아직 가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때의 약속은 아직도 유효하다.

 

30여 년 전 따스했던 어느 봄날의 국어 시간, 고등학교 교실에 앉아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교단에서는 선생님이 이 시를 예의 그 달콤한 목소리로 해설하고 있다. 시인은 왜 트럼펫 소리에 탑이 높아만 간다고 묘사했는지 설명하신다. 곡마단, 트럼펫, 탑, 산봉우리, 분수 등의 시어들이 내 가슴을 벅차게 한다. 그 장면이 눈에 잡힐 듯 선하다.

 

오월만 되면 이 시가 생각난다. 그때 친구들, 선생님, 지금은 모두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밖에는 그때와 다름없이 오월의 신록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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