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하여간 / 장철문

샌. 2006. 4. 14. 13:44

술자리에서 들은 얘기라 어떨진 모르겠는데, 하여간

청어(靑魚)라는 물고기가 있다는데, 하여간

그게 횟감으로는 참 끝내준다는데, 하여간

그놈 성질이 하도 급한 나머지

배 위로 올라오자마자 목숨을 탁 놓아버리는 바람에

그 착 감기는 살맛 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인데, 하여간

어느 코쟁이 나라의 좀 똘망똘망한 어부가

어찌하면 이걸 산 채로 도시에 가져가서 팔아먹을 수 있을까

밤낮으로 짱돌을 굴리다가

아하, 그렇지!

그럴싸한 수를 한가지 냈다는 것인데, 하여간

큼지막한 어항을 하나 만들어설라무네

거기 바다메기를 두어 마리 풀어놓고는

청어란 놈을 잡아 올리는 족족

어항에 집어넣어서는

득달같이 도시로 내달았다는 것인데, 하여간

청어란 놈은 바다메기한테 잡아먹힐까봐

어항 속에서 뺑뺑이를 도느라고

미처 죽을 새가 없다는 것인데, 하여간

(그 어항은 얼마만 할까

사울만할까

우리 동네 등대횟집 수족관만할까, 하여간)

잡아먹히는 놈은 잡아먹히고

헐레벌떡

살아남은 놈은 또 살아남아서

남의 생살 깨나 밝히는 혀들을 착착 감고 도는

값비싼횟감이 되었다는 것인데, 하여간

오늘 아침에도 나는 지은 죄도 없이

버스에서 내려 허둥지둥 택시를 갈아타고 직장으로 내빼는 것인데, 하여간

 

- 하여간 / 장철문

 

나 또한 무엇에 쫓기느라 이렇게 허둥지둥 살아가는지,

무엇을 쫓아가느라 머리를 쥐어짜며 이렇게 조바심쳐야 하는지, 하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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