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가을앓이

샌. 2005. 11. 9. 12:24

늦가을 풍경이 눈이 시리게 아름답다. 이런 가을을 펼친조물주는 아무래도 심술쟁이인가 보다. 가을을 앓는 사람을 더욱 서럽게 만드니 말이다.

 

그래도 나로서는 가을의 우울이 이번에는 덜 한 편이다. 한 때는 가을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기도 했는데, 다행히 올해는 미열 수준으로 통과할 것 같다. 축 늘어져 있는게 안돼 보였는지 옆의 동료가 농담을 한다.

 

"이런 날은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나눌 애인 하나 있어야 한다니까요. 아직 그런 애인 없어요?" "그러니까 평소에 신경을 쓰고 투자를 해 놓았어야 하는데 말이예요."

 

아플 때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귀찮고 싫지만 사랑스런 애인이라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애인이 상처를 낫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을의 우울은 근본적으로 우리 삶의 덧없음과 관련이 있다. 사람은 1년의 나이를 가을이 되어서야 한꺼번에 먹는다. 마음은 아직 소년이라고 하지만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어깨에 쌓인 세월의 무게에 짓눌리게 된다.

 

또한 가을의 우울은 소멸의 두려움과 자신의 내부 빈곤에 대한 자각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렇듯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우주의 섭리와 부딪치게 되는 때가 바로 가을이다.

 

퇴근길에 잠시 경복궁에 들리다. 가을 분위기에 젖으려는 사람들의 한가한 걸음이 이 계절과 잘 어울린다. 그러나 남자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바쁘다는 뜻일까? 은행잎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데, 짙은 가을 속을 걸어가는 중년의 여인들 뒷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그런데 담 밖에서 바라보는 근정전이왠지 쓸쓸해 보인다.

 



낮에는 가을물 든 교정을 거닐며몇 나무들의 모습을 담아보다. 봄이나 여름에는 녹색옷을 입고 다들 비슷하더니 가을이 되니 마치 경연이라도 하듯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낸다. 그러나 저 아름답게 보이는 색깔은 사람이 그러하듯 나무가 앓는 가을앓이의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찬탄하는 가을의 경색(景色)은 아픔과 성숙의 색깔인 셈이다.

 

아픔은 아픔으로 인해 위로 받고, 슬픔은 슬픔으로 인하여 참된 위안을 받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을을 앓는 사람 또한 저 가을 나무들로부터 충분히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은행나무 >

 


< 느릅나무 >



< 말채나무 >



< 참느릅나무 >



< 목련 >



< 단풍나무 >



< 산뽕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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