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아
세상을 담아낼 만치 커질 수도 있고
자살밖에 도리없어 작을 수도 있는 마음아
눈꼴시어 못 보겠던 남의 인생도 내 것처럼
우는 이와 같이 울고 웃는 이와 같이 웃자
대문에 이마에 앞가슴에
'헌 나는 없어졌음'
이런 문패 하나 내걸고 싶어
빈 그릇처럼
나머지가 없는 찌꺼기도 없는
- 마음 / 유안진
마음은 요술쟁이다.
전 우주를 품을 만큼 넉넉해지기도 하고, 바늘 하나 꽂을 수 없을 만큼 옹졸해지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이런 변덕을 겪는다.
점수(漸修) 뒤에 돈오(頓悟)는 과연 찾아오는 것일까?
짧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과연 얼마 만큼의 영적인 진보를 할 수 있을까?
같은 돌부리에 반복해서 똑 같이 넘어지며 나는 늘 제자리 걸음만 하는 것 같다. 인생 학교에서 나는 우둔한 학생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헌 나는 없어졌음'
이런 회심(回心)의 공개 선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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