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를 불며
지하철을 떠돌던 한 시각장애인이
종각역에 내려
흰색 지팡이를 탁탁 두드리며
길을 걷는다
조계사 앞길엔 젊은 스님들이
플라타너스 나뭇가지와
나뭇가지 사이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플래카드를 내걸고
분주히 행인들에게
팥죽을 나누어준다
교복을 입은 키 작은 한 여고생이
지팡이를 두드리며 그냥 지나가는
시각장애인의 손을 이끌고
팥죽을 얻어와 건넨다
나도 그 분 곁에 서서
팥죽 한 그릇 얻어 먹는다
곧 함박눈이 내릴 것 같다
- 12월 / 정호승
불교와 기독교가 만나고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만나고
너와 내가 가슴으로 만나서, 따스한 온기가 서로에게 전해진다면.....
그냥 지나가는 이웃의 손을 이끌고, 같이 팥죽을 나누는 세상이 된다면.....
펑펑 내리는 함박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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