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12월 / 정호승

샌. 2004. 12. 28. 12:50

하모니카를 불며

지하철을 떠돌던 한 시각장애인이

종각역에 내려

흰색 지팡이를 탁탁 두드리며

길을 걷는다

조계사 앞길엔 젊은 스님들이

플라타너스 나뭇가지와

나뭇가지 사이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플래카드를 내걸고

분주히 행인들에게

팥죽을 나누어준다

교복을 입은 키 작은 한 여고생이

지팡이를 두드리며 그냥 지나가는

시각장애인의 손을 이끌고

팥죽을 얻어와 건넨다

나도 그 분 곁에 서서

팥죽 한 그릇 얻어 먹는다

곧 함박눈이 내릴 것 같다

 

- 12월 / 정호승

 

불교와 기독교가 만나고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만나고

너와 내가 가슴으로 만나서, 따스한 온기가 서로에게 전해진다면.....

그냥 지나가는 이웃의 손을 이끌고, 같이 팥죽을 나누는 세상이 된다면.....

펑펑 내리는 함박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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