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소리들 / 나희덕

샌. 2004. 12. 9. 11:52

승부역에 가면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구름 옮겨가는 소리

지붕이 지붕에게 중얼거리는 소리

그 소리에 뒤척이는 길 위로

모녀가 손 잡고 마을을 내려오는 소리

발 밑의 흙이 자글거리는 소리

계곡물이 얼음장 건드리며 가는 소리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아지

다시 고개 돌리고 여물 되새기는 소리

마른 꽃대들 싸르락거리는 소리


소리들만 이야기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겨울 승부역

소리들로 하염없이 붐비는


고요도 세 평


- 소리들 / 나희덕

 

소리가 끊어져야 소리가 들린다.

진공이 단순한 무(無)가 아니듯, 우리 귀의 고막을 울리지 않는다고 소리 없음이 아니다.

오히려 들리지 않는 소리로 가득하다.

침묵의 소리(Sound of silence)..... 대음희성(大音希聲)......

세상 소리 끊어진 곳에 존재들의 소리가 붐빈다.

그 소리들이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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