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새 아침의 기도 / 조창환

샌. 2005. 1. 1. 17:10

새 아침에

꽃씨 하나 받게 하소서

작고 단단한 꽃씨 어루만질 때

씨앗 한 점에 우주가 담긴

그 신비, 느끼게 하소서

 

꽃나무 모종 하나 가슴에 품고

새봄 맞게 하소서

꽃나무 모종 하나 뜨락에 심고

실비 내리는 새벽 바라보게 하소서

 

햇빛 이글거리는 날

뜨거운 바람 번득일 때

백일홍, 채송화, 과꽃, 접시꽃....

사람의 마을에 붉은 꽃 가득 넘쳐

그 꽃밭에서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마침내

산그늘 홀로 무거워지고

사람의 마을에 가을이 오면

그늘 속에 맑은 열매 줍게 하소서

 

흐린 하늘과 차가운 바람 속에

저희가 너무 오래 떨었사오며

거친 말, 욕된 날, 무서운 밤을

저희가 너무 오래 겪었사오니

 

새 아침에

단단한 꽃씨 한 점 내려 주시어

거기서

실비 내리는 새벽과

이들거리는 사랑 보게 하시고

그늘 속에 맑은 열매 기다리게 하소서

 

- 새 아침의 기도 / 조창환

 

새해 첫날 아침에는 큰 백지 한 장 선물로 받은 것 같다.

또 새해 아침에는 미답의 처녀지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설레임도 있다.

지난 날의 허물들은강물을 따라흘려 보내고, 새로운 시간의 모래밭 위에 찍힐 내 작은 발자국을 그려보는 맑은 기도가 새해 아침에는 있다.

사람의 마을에 나와서 쉰 두번째로 맞는 새해 아침, 이젠 희망과 기다림조차 무거워지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첫날의 처음 시작하는 마음은 늘 새롭고 신선하다.

뭔가 좋은 일들이 자꾸 자꾸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날,

2005년 한 해도 모두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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