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마음 / 유안진

샌. 2005. 1. 10. 14:58

그릇아

세상을 담아낼 만치 커질 수도 있고

자살밖에 도리없어 작을 수도 있는 마음아

눈꼴시어 못 보겠던 남의 인생도 내 것처럼

우는 이와 같이 울고 웃는 이와 같이 웃자

대문에 이마에 앞가슴에

'헌 나는 없어졌음'

이런 문패 하나 내걸고 싶어

빈 그릇처럼

나머지가 없는 찌꺼기도 없는

 

- 마음 / 유안진

 

마음은 요술쟁이다.

전 우주를 품을 만큼 넉넉해지기도 하고, 바늘 하나 꽂을 수 없을 만큼 옹졸해지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이런 변덕을 겪는다.

점수(漸修) 뒤에 돈오(頓悟)는 과연 찾아오는 것일까?

짧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과연 얼마 만큼의 영적인 진보를 할 수 있을까?

같은 돌부리에 반복해서 똑 같이 넘어지며 나는 늘 제자리 걸음만 하는 것 같다. 인생 학교에서 나는 우둔한 학생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헌 나는 없어졌음'

이런 회심(回心)의 공개 선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긍정적인 밥 / 함민복  (2) 2005.01.29
여행자를 위한 서시 / 류시화  (0) 2005.01.17
새 아침의 기도 / 조창환  (0) 2005.01.01
12월 / 정호승  (1) 2004.12.28
바람만이 알고 있지 / 밥 딜런  (2) 2004.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