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뒷산이 하하하

샌. 2011. 8. 21. 07:48

글 참 재미있게 쓴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뒷산에 대한 얘기만으로 책 한 권을 만들었다. <뒷산이 하하하>라는 책이다. 쓴 이는 건축가 이일훈 씨다. 얼마 전에는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라는 생태환경에 관한 책도 냈다.

서울 서쪽 변두리에 있는 지양산이 이야기의 무대다. 저자는 동네 뒷산을 오르내리며 만나게 된 풍경과 사람들 이야기를 적었다. 무심히 지나치는 사소한 것들이 저자를 통해 깨소금 같은 얘깃거리로 바뀌었다. 약수터의 안내문이나 현수막, 약수터에 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물통, 지팡이에서 텃밭, 나무와 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이야기의 소재다. 물론 약수터를 중심으로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일 많다. 우리의 보통 이웃인 그들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욕망,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뒷산이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그런 산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보물창고가 된다. 사랑해서 바라보게 되면 보물 아닌 것이 없다. 그저 밋밋하기만 한 뒷산에서 이렇게 맛난 이야기를 찾아내는 저자의 재능이 놀랍다. 단순한 글재주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인문학적, 역사적, 동식물의 생태학적 지식이 바탕이 되어 있다. 글 도처에서 저자의 내공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집에도 뒷산이 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동네 뒷산이라고 불러 마땅할 그런 산이다. 산책하고 오는데 두세 시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산 주위에 큰 마을이 없어 산은 언제나 한가하다. 산에 있는 동안 한 사람도 못 만나는 경우가 많다. 휴일도 마찬가지다. 지양산에 비하면 단조롭고 조용하다. 이야깃거리를 찾기 어렵다. 그렇지만 나도 뒷산에 대해 뭔가 써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 책을 읽고 난 소회다.

이 책은 작고 평범한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인생의 철리를 깨우치는데 굳이 멀리 나갈 필요가 없다. 뒷산에서도 얼마든지 삶을 풍요롭게 하는 보물을 캐낼 수 있다. 크고 화려한 것을 쫓아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잠시 발을 멈추고 눈을 들면 거기에 산이 있다고,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지만 앞만 보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뒷산이 있다고, 그 산을 만나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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