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즐거운 소음 / 고영민

샌. 2013. 7. 14. 11:22

아래층에서 못을 박는지

건물 전체가 울린다.

그 거대한 건물에 틈 하나를

만들기 위해

건물 모두가 제 자리를 내준다.

그 틈, 못에 거울 하나가 내걸린다면

봐라,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양보하면

사람 하나 들어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저 한밤중의 소음을

나는 웃으면서 참는다.

 

- 즐거운 소음 / 고영민

 

 

심야에 세탁기 돌리는 소음으로 이웃 간에 칼부림이 나고 한 사람이 중태에 빠졌다는 뉴스를 어제 들었다. 얼마 전에는 현직 부장판사가 아파트 위층에 사는 주민과 층간소음 문제로 다툰 후 지하 주차장에 있는 이 주민의 차량 열쇠 구멍에 접착제를 넣고 타이어를 펑크냈다가 입건되기도 했다. 합의를 했지만 결국은 옷을 벗었다는 후문이다. 부장판사까지 이럴 정도니 공동주택의 층간소음 문제가 보통이 아니다.

 

왜 그렇게 이성을 잃게 되는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퇴직하고 조용한 곳으로 이사 오면서 제일 걱정스러웠던 게 바로 층간소음이었다. 웬걸, 위층에 아이 둘이 있는데 올빼미족인지 밤 11시가 되면 쿵쾅거리기 시작하는 거였다. 그러다가 1시가 넘어야 진정되었다. 낮 소음은 어찌 견딘다고 하지만 한밤중의 소음은 환장할 노릇이었다. 험한 생각도 여러 차례 들었다. 찾아가 부탁하고, 경비실을 통하고, 그래선지 2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위층에서 시끄럽게 하지 않으려 조심하는 게 보이니 어지간한 건 즐겁게 참을 수 있다. 이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나는 소리에 무척 예민하다. 그러다 보니 집 앞에 있는 태권도 학원도 스트레스였다. 낮에도 집에 있으니 아이들과 사범의 기합 소리를 온통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참기 힘들 때는 그쪽 방향 창문은 다 닫아야 했다. 먹고살기 위해 애쓰는 젊은이가 안쓰러워 항의도 못했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지난달에 태권도 학원이 다른 데로 옮겨갔다. 학원이 번창하여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덕분에 소음의 화근이 없어졌다. 그래서 올여름은 창문을 실컷 열어놓고 지낸다.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작년만 해도 이사 갈 생각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녔는데 이젠 여기서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다.

 

생활 소음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이웃이 얼마나 피해를 보는지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다. 다 내 식대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면 먼저 남의 입장에서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조심하는 게 느껴지면 이웃도 넉넉히 이해해 줄 것이다. 서로 자신들 입장만 내세우다 보니 이웃 간에 웬수가 된다. 소음을 차단하는 완벽한 아파트가 나오지 않는 한 국민 정신건강을 위해서 서로가 조심하고 이해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말 막돼먹은 사람이 있기도 하다.

 

시인은 한밤중에 못 박는 소음을 들으며 인간 세상에서 필요한 틈을 연상한다. 우리들 사이에 틈이 있어 서로가 조금씩만 양보하면 사람 하나 들어가는 것쯤은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빡빡한 현대 생활은 바람이 통해야 할 그 틈마저 다 메워버렸다. 과연 '즐거운 소음'은 어디까지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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