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백수는 백수다

샌. 2011. 7. 2. 11:50

“백수는 백수다.” 아내가 날 놀릴 때 쓰는 말이다. 앞의 백수는 일 없는 ‘백수(白手)’이고, 뒤의 백수는 백 살까지 산다는 ‘백수(百壽)’다. 퇴직하고는 마음 편히 놀고먹는 한량 생활을 하고 있으니 오래 살 거라는 반 비아냥이다.

퇴직을 하고 보니 직장생활의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컸다. 교실에 들어가야 한다는 중압감에 늘 시달렸다.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도살장에 끌려 들어가는 소의 심정이 태반이었다. 이제 거기서 해방되니 마음은 날 듯 가볍다. 스트레스로 인한 과민성대장증상도 사라졌다.

학교 밖에서 교단 붕괴 소식을 들으니 더 착잡하다. 남아 있는 동료들이 겪을 심적 고통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어제도 지인으로부터 마음 아픈 얘기를 들었다. 요사이 아이들은 버릇이나 개념 없는 정도를 따질 단계도 넘어섰다. 얼마나 더 망가져야 하는지 답답하다.

그런 소굴을 벗어나서 다행이지만 혼자만 빠져나온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악조건 속에서도 교사의 본분을 다하려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다. 그분들의 진정성은 언젠가는 꽃이 필 것이라 믿는다.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일과 씨름하는 게 즐거운 사람도 있고, 나 같이 한 발 물러나 유유자적 사는 게 체질에 맞는 사람도 있다. 나는 지금 이대로가 행복하다. 그러다가는 백 살을 넘기겠다고 아내가 놀리지만 마음속으로는 흐뭇하다. 내 여유로운 삶의 모습을 아내도 공감해준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백수가 백수인 건 당연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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