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종래의 과학은 우주 만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규칙성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법칙과 원리로 우주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사물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까지 묻는다. 지금 여기에 왜 내가 존재하는지 과학이 답하려고 한다. 전에는 형이상학으로 철학과 신학의 영역이었다.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과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가 쓴 <위대한 설계>는 물질과 생명의 궁극적인 질문에 답하려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과학과 철학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지은이가 말한 대로 지금 우리는 과학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전환점에 도달하고 있는지 모른다. 물리 이론의 목표와 조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는 현대 과학을 통해 우리의 세계관이 본질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책은 세 가지 질문을 한다.
첫째, 왜 무(無)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을까?
둘째, 왜 우리가 있을까?
셋째, 왜 다른 법칙이 아니라 이 특정한 법칙들이 있을까?
이것은 엄청난 질문이다. 생명, 우주, 만물에 대한 궁극의 질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완벽한 과학의 대답을 기대해도 될까? 어쨌든 현대 과학의 최전선에 있는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시도하고 있다.
아직은 여기에 대해 완전한 물리 이론이 나온 것이 아니다.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큰 것으로 M이론이 있다. M이론은 깔끔한 단일 이론이 아니라 끈이론과 초중력이론을 아우르는 이론들의 종합 네트워크다. M이론에서는 11차원의 시공간을 이야기하며 그 해에 따르면 무려 10의 500승 개의 다양한 우주가 가능하다. 우리 우주는 제각각의 물리 법칙들을 가진 무수한 우주 중의 하나라고 여겨진다. 가능한 우주들로 이루어진 광활한 '풍경'이 존재한다.
우리 우주는 빅뱅과 인플레이션을 거쳐 지금의 법칙과 물리상수를 가진 우주로 존재하고 있다. 만약 물리상수 중 하나가 조금만 달랐더라도 생명이 존재하기는 불가능했다. 우리는 아주 드물게도 생명이 존재하는 우주에 산다. 참으로 특별한 사건이고 불가사의지만,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이 우주를 정밀하게 조정해 놓았다고 볼 수는 없다. 자연법칙은 다양한 우주들에서 다양한 값과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우리는 매우 확률이 낮은 이 우주에 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진공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아니다. 양자역학적으로는 무수한 입자의 생성 소멸이 일어나며 에너지가 들끓고 있다.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런 진공 요동으로부터 우주가 탄생한다. 지은이는 이것을 조금은 애매한 용어인 '자발적 창조'로 부르고 있다. 지은이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발적 창조야말로 무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는 이유,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우주의 운행을 시작하기 위해서 신에게 호소할 필요는 없다." 우주의 탄생과 전개에 대해 예측하고 기술하는 완전한 이론이 언젠가는 등장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좀 다른 방향에서 접근했지만 그분이 찾고자 한 대통일이론이 이것이다. 물리학자들은 그런 단계에 접근하고 있다.
기적은 자연법칙을 벗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우리 우주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과학에 의해 밝혀질 우주의 신세계는 인간 인식의 틀을 뒤흔들어 놓을 것이다. 그런 전환기에 우리가 서 있다. 지적 설계론에서 말하는 초월적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도 인류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밝혀내고 있다. 그 단계가 되면 우주의 신비, 물질 너머에 있는 그 무엇에 더없는 경외심을 품게 될지 모른다. 또한 우주에 대한 인간의 지식은 우리를 한없이 겸허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왕국 (0) | 2014.02.08 |
---|---|
세상에 예쁜 것 (0) | 2014.02.03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0) | 2014.01.24 |
변호인 (0) | 2014.01.18 |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0) | 2014.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