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서울 놈들만 좋겠네

샌. 2011. 6. 16. 20:09


여주 신륵사 앞을 흐르는 남한강의 4대강 공사 현장을 찾았다. 공사가 마무리되어 가는 모습이 어떨까 무척 궁금했다. 이곳은 상류에 강천보, 하류에 여주보가 세워지는 중간 지점으로 전에는 황금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유원지였다. 그러나 그 아름답던 여강(驪江) 풍경은 다 사라졌고 지금은 거대한 제방과 흙더미만 쌓여있다. 이렇게까지 살벌하게 변했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이건 강이 아니라 수로라고 해야 옳다. 어떻게 한 순간에 이렇게 망가뜨릴 수 있지, 가슴이 아프고 먹먹해졌다.

 

신륵사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강월헌(江月軒)에 섰다. 마침 단체 관광을 온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그분은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나옹선사의 시를 마지막으로 읊어준 뒤에 4대강 공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곳 여주는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공장이나 다른 시설이 들어설 수 없어 오직 관광으로 먹고살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보가 완성되면 수도권 최고의 관광명소가 될 겁니다. 건너편에는 5성 호텔도 들어섭니다. 여주보가 물을 가둬주면 여기는 호수가 되고 유람선이 다닐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이 10년 뒤에 이곳을 다시 찾아오면 깜짝 놀랄 모습을 보게 되겠지요.” 그러자 일행 중 누군가가 이렇게 빈정거리듯 말했다.

 

“서울 놈들만 좋겠네!”

 

현장에 온 사람들 중에는 4대강 사업을 찬성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보기 좋다며 연신 감탄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대규모 토목공사를 강행하는 명분이 과연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가? 일자리 창출도 아니고, 내가 보는 관점에서 강 살리기는 더욱 아니다. 신륵사에서 본 모습은 강 살리기가 아니라 강 죽이기이며 운하 만들기라는 의심을 아직도 버릴 수 없다.문제는 올해 사업이 완료되어도 앞으로 유지보수비가 엄청나게 들어간다는데 있다.보도로는 내년에만 2400억 원 정도가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예상치의 열 배가 넘는 액수다. 과연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많은 예산을 써가며 강을 파헤치고 생명을 죽이며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는 걸까.

 

후대에 가서 이 사업을 어떻게 평가할지를 생각하면 두려워진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차라리 내 판단이 틀렸으면 좋겠다. 지금 내 눈 앞의 저 황폐하게 변한 현장이 이 시대가 얼마나 천박한 시대였는지를 증언하는 상징물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마가 시작되다  (1) 2011.06.23
어머니 생신  (0) 2011.06.20
김수증의 자취를 따라서  (0) 2011.06.13
2박3일 바둑여행  (0) 2011.06.06
광주 문형산  (0) 2011.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