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김수증의 자취를 따라서

샌. 2011. 6. 13. 11:38

경떠회 회원들과 김수증의 자취를 따라 화천 지역을 돌아보았다. 김수증이라는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었다. 인물사전에는 ‘조선시대의 문신(1624-1701), 자는 연지(延之), 호는 곡운(谷雲), 숙종 15년(1689) 기사환국으로 동생 수항이 사사되고 이듬해 동생 수흥도 배소에서 죽자 벼슬을 그만두고 곡운산에서 은거하였다. 저서에 <곡운집>이 있다’라고 간단히 나와 있다.

 

B가 정리해준 안내문에 의하면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은 파란만장하던 역사의 한 시기에 권력에 대한 욕망보다는 은둔의 길을 택한 사람이다. 아우 둘은 차례로 영의정을 지냈다. 김수증의 할아버지가 병자호란 때 척화파 중 한 사람인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남한산성에 들어가 항쟁하는 모습을 어린 시절에 지켜보았을지 모른다. 그의 나이 45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3년 상을 치른 뒤 그는 화천 땅을 찾아온다. 김수증은 1673년에 성주부사, 1687년에 청풍부사를 지냈지만 그의 마음속은 정치보다는 도연명과 같은 은둔의 길을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먼저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그의 묘를 찾았다. 영의정을 지냈던 두 아우는 장희빈 아들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다 유배를 가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김수증은 아마 곡운에 더욱 은둔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는 1701년, 78세로 화음동에서 죽었고 집안의 묘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의 석실에 묻혔다.

 


김수증은 화악산 북쪽 삼일계곡에 자신이 거주할 화음동정사(華陰洞精舍)를 짓고 신선처럼 살았다. 당시에는 삼일정, 부지암, 송풍정 등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일부 복원이 되어 있지만 옛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김수증은 주자를 흠모하는 성리학자였지만 도가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1673년에는 북한강의 지류인 사내천에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谷)을 흉내내어 곡운구곡(谷雲九谷)을 정했다. 우리는 9곡에서부터 1곡까지 차례로 답사를 했다. 억지춘향 식으로 구곡을 정한 게 고리타분하고 정형화된 사고방식의 단면을 보는 듯 했다. 그나마 경치로 치면 백운담(白雲潭)이라 불리는 4곡이 그중 뛰어났다. 뒷날 여기를 지나간 정약용도 백운담이 9곡 가운데 첫째가는 기이한 볼거리라고 썼다.

 

또한 곡운구곡을 노래한 시에서 김창협은 4곡을 이렇게 읊고 있다.

 

사곡이라 시냇물 푸른 바위 기대보니
가까운 솔 그림자 물속에서 어른댄다
날뛰며 뿜는 물 그칠 줄을 모르니
기세 좋은 못 위엔 안개 가득 끼었네

 

화천 벽지까지 내려와 은둔자의 삶을 산 그를 어떻게 평가할까? 권력이 있고 돈이 있었기에 가능한 삶이었지만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은일을 택한 그의 삶은 선조들의 정신문화를 엿볼 수 있는 한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김수증과 같은 지배계급의 사상보다는 민중을 기반으로 하는 운동과 민초들의 삶에 훨씬 더 관심이 간다. N이 말한 동학운동도 한 예가 될 것이다. 지배체제를 전복하려는 혁명이기보다는 철학, 종교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그는 말했다. 인내천(人乃天)이라는 한 마디만으로도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언젠가는 동학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답사를 해보고 싶다.

 


김수증의 유적지를 찾아본 첫날 여정을 마치고 강원숲체험장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M이 애써 가져온 복분자주는 한 병을 채 비우지 못했다. 밖에서는 젊은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밤늦게까지도 끊어지지 않았다.

 




아침 산책길에 만난 숲 속 나방의 군무가 화려했다. 화천시내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고 붕어섬 산책을 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이곳에서 붕어가 많이 잡힌다고 붕어섬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아직 사람들이 찾아오기 이전의 이른 시간이라 섬은 조용하고 한적했다.

 



원래는 산소길을 걷고 싶었으나 햇살이 너무 따가워 포기했다. 화천 산소길은 북한강변을 따라 조성된 길이 40여 km에 이르는 산책로다. 물을 옆에 끼고 걷는 아름다운 길이지만 그늘이 없는 게 단점이다. 물 위에 부교를 띄워 만든 수상로를 잠깐 걸었다.

 


이번 1박2일 여정의 마지막은 화천군 두목리에 있는 이외수의 감성마을이었다. 그러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이곳에 와서 책에서 만나고 느꼈던 ‘감성’은 멀리 도망가 버렸다. 조경 경사가 마무리되면 좀 나아지려나.

 

사창리에서 막국수로 점심을 먹고 광덕고개를 넘어 돌아왔다. 자칭 인비게이션인 J 덕분에 일요일 오후의 서울로 들어오는 길이 수월했다. 함께 했던 일곱 명은 전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인데 각자 개성이 강하면서 멋진 친구들이다. 사실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것보다도 함께 모여 얼굴을 보고, 얘기를 나누는 게 더 즐겁다. B가 우리 모임을 ‘경떠회’로 재미나게 이름 붙였다. 소중한 인연이 앞으로도 길게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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