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 소년은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 보았다. 갈밭머리에서 바라보는 서당골 마을은 쪽빛 하늘 아래 한결 가까워 보였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 좃 호두알을 만지작거리며, 한 손으로 수없이 갈꽃을 휘어 꺾고 있었다."
양평에 '황순원 문학관'이 있는 것은 '소나기' 속의 이 구절 때문이란다. 그래서 서종면 수능리에는 문학관과 함께 소나기마을이 만들어져 있다. '소나기'에 나오는 장면을 형상화해서 문학공원으로 만들었다.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는 소나기를 재현한 것이다.
"수숫단 속은 비는 안 새었다. 그저 어둡고 좁은 게 안됐다. 앞에 나앉은 소년은 그냥 비를 맞아야만 했다. 그런 소년의 어깨에서 김이 올랐다. 소녀가 속삭이듯이, 이리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소녀가 다시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 바람에 소녀가 안고 있는 꽃묶음이 우그러들었다. 그러나 소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비에 젖은 소년의 몸 내음새가 확 코에 끼얹혀졌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도리어 소년의 몸기운으로 해서 떨리던 몸이 적이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소란하던 수숫잎 소리가 뚝 그쳤다. 밖이 멀개졌다."
황순원의 '소나기'는 아득한 옛날의 추억 한 도막을 길어올린다. 알퐁스 도데의 '별'도 떠오른다. 소설에 나오는 수숫단이 이렇게 생겼나 보다.
황순원 선생 부부의 묘가 문학관 옆에 있다.
양평에서 사는 친구 집에서 하룻밤 묵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대지 300평에 건평 46평인 전원주택은 주눅들 정도로 멋있었다. 15년 전과는 완전히 입장이 뒤바뀌었다. 경제적 면만 아니라 자식 농사도 잘 짓고, 일가친척과도 단란하게 지내는 게 부러웠다. 내가 헛살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자괴감이 오래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저녁 먹은 게 체해서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떠올라 실소를 했다. 친구야, 너무 자랑하지는 말고 지금처럼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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