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비 가는 소리 / 유안진

샌. 2019. 2. 16. 11:26

비 가는 소리에 잠 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 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의 음정(音程)

 

밤비에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보는 실루엣, 수묵으로 번지는 뒷모습의 가고 있는 밤비 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하는 모양이다

 

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은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어느새 가는 소리가 더 듣긴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 죄다

 

- 비 가는 소리 / 유안진

 

 

비 '오는' 소리만 알았지, '가는' 소리를 의식하지는 못했다. 오는 게 있으면, 응당 가는 것도 따른다. 삼라만상의 변화가 그러하다. 누구나 이 세상에 던져지듯 왔다가 불현듯 사라져 간다. 산다는 건 죽어간다는 뜻이다. 오고감, 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뒷면 같다. 어제는 오랜만에 눈이 왔다. 기온으로 봐서 올겨울의 마지막 눈이 될 것 같다. 눈 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느덧 가는 모습에 자꾸 애련해지는 나이가 되었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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