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겨울이 가면서 무어라고 하는지 / 장석남

샌. 2019. 2. 25. 08:55

겨울이 가면서 무어라고 하는지

새벽길에 나서서 서리 앉은 한길에

앉아보았지

갈비뼈가 가지런하듯

겨울은 길어 차분하게 정이 들고

긴 겨울 동안 매일의 새벽은

이러한 고요를 가지고 왔던가

매 새벽마다 이걸 가져가라 함이었던가

왜 그걸 몰랐을까

겨울은 가면서

매 새벽마다

이 깨끗한 절망을

가져가라 했던가

꽃씨처럼

꽃씨처럼

 

- 겨울이 가면서 무어라고 하는지 / 장석남

 

 

낮 기온이 10도 중반까지 올라가니 봄이 확 다가온 듯하다. 즐겨 입었던 패딩 옷이 갑자기 무거워진다. 동백꽃이 떨어지듯 한순간에 툭, 하고 겨울이 꺾이는 것 같다.

 

올겨울은 힘들게 보냈다. 그 여파가 아직 내 몸 안에는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선지 이 시 제목에 끌리면서 여운이 깊게 남는다. 내용 중에서는 '깨끗한 절망'이라는 구절에 오래 머문다. 시인이 이 겨울에서 '고요'와 함께 배운 것인가 보다. 추한 희망보다는 깨끗한 절망이 다. 겨울이 가면서 무어라고 하는지 잘 들어보고, 인간 영혼의 고결함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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