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뒷모습

샌. 2019. 7. 17. 12:49

"뒷모습은 정직하다. 눈과 입이 달려 있는 얼굴처럼 표정을 억지로 만들어 보이지 않는다. 마음과 의지에 따라 꾸미거나 속이거나 감추지 않는다. 뒷모습은 나타내 보이려는 의도의 세계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세계다.

뒷모습은 단순 소박하다. 복잡한 디테일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한 판의 공간, 한 자락의 옷, 하나의 전체일 뿐이다.

뒷모습은 골똘하다. 골똘함을 얼굴보다 더 잘 나타내는 것이 등이다.

뒷모습은 너그럽다. 그 든든함과 너그러운 등에 의지하고 기댈 수 없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어머니의 등이 있어서 우리는 업혀서 안심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뒷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나와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동지다. 서로 마주 보는 두 사람은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지만 서로를 공격하려는 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 등을 보이는 사람은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와 뜻을 같이 하는 동지일 수 있다. 같은 방향, 같은 대상, 같은 이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심전심의 기쁨을 맛본다.

뒷모습은 쓸쓸하다. 나에게 등을 돌리고 가는 사람,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등을 돌리고 잠자는 사람, 나를 깨어 있는 기슭에 남겨두고 잠의 세계로 떠난 사람은 우리를 쓸쓸하게 한다."

 

<뒷모습>이라는 사진집에 실린 역자의 글이다. 지난 여행에서 누군가가 우리 부부의 뒷모습 사진을 찍어주었다. 요사이 뒷모습 찍는 게 대세라면서. 우리는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다. 사진에 나온 내 뒷모습은 생경하고 어색했다. 정면 사진은 가까이 다가가게 되지만, 뒷모습 사진은 얼굴을 뒤로 물러나게 한다. 사진의 특징 중 하나가 '낯설게 하기'에 있다면, 뒷모습이야말로 사진의 소재로 적당하지 않나 싶다.

 

<뒷모습>은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집이다. 여기에 미셸 투르니에가 사진마다 감상을 붙였다. 인간의 뒷모습을 찍은 흑백사진은 20세기 중반 무렵에 촬영된 듯하다. 사진을 보면서 투르니에의 느낌을 확인해 보는 재미가 있다. 같은 사진을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이 신선하다.

 

사진, 그림, 시의 감상에 공통된 것이지만, 꿈보다 해몽인 경우가 많다.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감상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어진다. 감상자에 의해 작품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이 사진집에 나오는 사진과 글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여기에 세 작품을 소개한다.

 

 

왜?

땅에서 밀과 보리와 벼를 거두어들이는 것이 천직인 저 사람이 왜, 남들에게 자양을 공급하는 저 사람이 왜, 자신은 저토록 영양실조로만 보여야 한단 말인가? 그가 등에 진 나무 쟁기는 왜 저 소들의 앙상한 등과 엉덩이 뼈를 저토록 완연하게 닮아야 한단 말인가? 어깨 위 비스듬히 걸머진 저 노동의 도구가, 보는 사람의 눈에는 왜 나무로 다듬은 또 다른 도구를, 형벌과 사형집행에 쓰이는 또 다른 도구를 이토록 집요하게 연상시킨단 말인가? 여기가 배고픔과 신성한 존재의 나라 인도이기 때문이 아니면, 왜?

 

 

계집아이와 두 마리 곰

졸고 있는 이 남자의 추한 모습을 보며 이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남자들은 여자들 앞에서 부끄럼 없이 잠을 잘 수 있다. 사랑하고 난 뒤 혼곤한 잠은 사랑의 감미로움과 꿈을 연장해준다. 그러나 낮잠이란! 너무 배불리 먹고 난 뒤의 저 감당 못할 식곤증이란! 여기서는 섹스보다, 사랑보다 부른 배가 우선. 소녀의 눈에 그는 추하게만 보인다. 그래서 한 발자국도 더 다가가고 싶지 않다. 필경 안 좋은 냄새가 날 테니. 코 고는 소리만 들어도 지겹다. 그렇지만 아프리카 여인이 아기를 업듯 등에 업은 털북숭이 아기 곰과는 떨어질 수 없다. 그 수컷 인형은 꼭 필요하다. 말을 걸고 보살펴주고 마음속으로 죽을 먹이고 때로는 맴매도 해야 하니까. 이 폭신한 가짜 애인이 있어야 마음과 손을 훈련할 수 있으니까. 소녀는 아직 모른다 - 곧 알게 되겠지 - 이쪽과 저쪽은 서로 통한다는 것을. 즉, 가냘프지만 부서지지 않는 어떤 다리가 두 마리의 곰, 털북숭이 곰과 잠든 곰을 이어놓고 있음을.

 

 

저 남녀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틀림없다! 부자들이라면 아예 수영을 한다. 수영하는 데 필요한 팬티도 수영복도 다 갖춰놓았다. 수영복의 표면적은 그걸 가진 사람의 재산에 반비례하는 법. 때문에 아주 큰 부자들은 아예 벌거벗고 헤엄친다. 부자들은 물론 수영을 할 줄 알기에. 가난한 사람들은 수줍다. 추위를 타고 겁이 많다. 그래서 세상의 첫날처럼,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아주 조금씩만 앞으로 나가본다. 남자는 양말을 신은 채, 여자는 치마를 약간 걷어올리고. 그러나 이 즐거움과 정다움이 이 한때를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으로 만들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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